▲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아빠와 할머니의 건강이 점점 안좋아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노인전문 간호사가 되고 싶다.” 우리 반 H학생은 생활기록부의 진로 희망과 그 희망사유 란에 들어갈 내용을 이렇게 적어 왔다. 반 아이의 아련하고 가슴 뭉클한 장래 희망과 이유를 읽고서 까맣게 잊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에 대한 기억들이 무뎌진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 이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는 장래 희망. 내 꿈은 뭐였을까. 그 시절 나는 책 읽는 것이 좋았다.

초·중학교 시절, 집안의 장식장 일부처럼 우리 집에도 한국 단편 문학전집 같은 것들이 있었다. 세계 명작 동화 전집 50권도 있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플란다스의 개’ 등을 읽으며 꿈 많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갔고, 중학생 시절에는 문학 전집 한권 한권을 읽으며, 이상의 ‘날개’를 꿈꾸었고,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가가 되면 어떨까. 대학생 때는 기형도의 시를 읽고, 읽으며 빛나는 비유와 상징을 담은 시인이 되고 싶었고, 때때로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해주는 드라마를 만들거나 쓰기로 작정했던 적도 있었다. 한때는 삼형제로 구성된 산울림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 형제들이 그런 밴드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곤 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낯설고, 기쁘고, 안타깝고, 부끄럽고, 그리운 것들이었다.

“아빠, 시집은 언제 내?” 어느 날, 출근길 차안에서 느닷없이 딸아이가 내게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다. 초등학생 막내 아이도 “아빠, 이제 시인이 되는 거야?”하고 슬며시 묻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언젠가 나는 아이들한테 조만간에 시인으로 등단하겠다고, 시집을 낼 것이라고 그럴 듯하게 농담 삼아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꿈 꿀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의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한테 시집을 못 낸다면 거금의 용돈을 주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딸아이는 그러면 “아빠 시 한편도 못 썼지?”하며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거금의 용돈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희망을 품어 본 적이 있었는가.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현실이 아무리 고단해도 우리네 인생에는, 우리들 곁으로 희망이 스친다. 대단한 건 없어도, 눈부시진 못해도, 그런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 이를테면 사랑에 빠진 이들이 놀이 공원을 꿈꾸고, 날아온 문자하나에 하루가 종일 설레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것들. 꿈이란 그런 것 아닐까.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꼭 그렇게 되어 보고 싶은 것. 그것 때문에 인생이 혹 일그러지고 깨지게 되더라도 말이다. 힘들고 재미없는 때에도 그 꿈을 생각하면 위안을 얻고, 이뤄지건 안 이루어지건 꿈이 있다는 건 쉬어 갈 의자를 하나 갖고 있는 일 같은 것. 생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모두들 꿈꾸는 당당한 그대들이 되길. 길로만 다니려는 우리보다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길.

김경식 삼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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