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의 서훈등급(3등급 독립장)이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라는 미래가 보장된 자리는 물론,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았고 목숨까지 바쳤다. 어떤 상훈으로도 그를 제대로 평가했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박 의사의 활동기간이 1910~1921년으로 짧았고 해방되기 17년 전에 순국함으로써 광복후 거의 잊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 원인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울산에서 박의사의 서훈등급 재평가를 비롯해 지역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사단법인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칭)가 설립된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박의사의 공적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서훈등급을 높이기 위한 일을 할 단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박의사를 재조명하는 것에 비중을 둔 단체라면 오랜 역사를 가진 박상진의사추모사업회와 이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또 지역인물을 발굴·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라는 이름이 적절한지도 고민해볼 일이다.

우선, 박의사의 재조명 사업은 울산시민들의 한마음이 중요하다. 서훈등급 향상을 추진하는 것도 그의 정신을 후손들이 제대로 이어받도록 하자는 것에 목적이 있는 만큼 정치적 이념에 따라 시민들을 두갈래로 나누게 된다면 아니한만 못하다. 이번 우리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 설립에는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의 이상헌 국회의원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원은 당선후 곧바로 고헌 생가를 찾을 만큼 고헌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반면 추모사업회는 이번 선거에서 경쟁했던 자유한국당의 박대동 전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다. 지역주민들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그로 인해 공연히 고헌정신이 훼손될까 걱정이다. 하나로 결집,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의 정체성 확립이다. 정체성은 정명(正名)에서 비롯된다.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은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대대적으로 전개된 일재 잔재 청산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목적인 법인이라면 그에 걸맞은 이름을 가졌으면 한다. 역사적 인물 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울산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울산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을 두루 기리는 사업을 해나가는 단체가 있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했다. 경기침체와 더불어 인재가 빠져나가는 도시가 돼가고 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랑스런 인물이 많은 도시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