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1990년대 초반이다. 이때만 해도 사교육계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요즘에야 유심히 살펴야만 찾을 수 있는 음악학원과 미술학원의 입지가 당시 유행하던 속셈학원을 위협할 정도로 많았다. 그 배경에는 1980년대 경제호황기를 거치면서 경제수준이 올라간 것에 더해 소위 모차르트 효과로 대표되는 예술교육에 대한 신봉이 큰 역할을 했다.

영향은 초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악기 하나 다루는 정도는 그리 큰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고, 학급별 한 대뿐인 풍금의 수석 연주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급우끼리 다투는 것 또한 흔한 경관이었다. 그뿐이던가? 미술실에 나열돼 있던 석고상을 곧잘 따라 그리는 급우도 상당히 많았다. 아마도 학원에서 배웠으리라. 그만큼 예술교육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경험은 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학급당 인원수가 40여명 정도 되는 남자학교를 다녔는데 악기발표 시간만 되면 반에서 일곱, 여덟은 피아노 연주를 했다. 그것도 어설픈 정도를 넘어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연주를 해냈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니 그 수치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적어도 5명 중에 1명 이상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간 세계무대에 드문드문 배출되던 음악가들이 2000년대 들어 봇물 터지듯 등장한다. 임동민·임동혁 형제, 손열음, 장한나, 조성진 등등 이제 국제 콩쿠르 시상식에 한국인 입상자가 없는 것이 더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1990년대 예술교육이 영향을 미쳤음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IMF를 거치고 이러한 분위기도 수그러든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부모들은 예술교육에 대한 투자를 멈췄고, 그 흔하던 음악학원은 이제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 이른 나이에 순수예술을 접하지 못하다 보니 예술에 대한 다양성마저 실종해가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렇다면 예술교육은 왜 이렇게 급격히 소멸된 것일까? 그 문제의 핵심은 예술교육이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데서 찾을 수 있다. 경제호황기에 성장한 예술교육시장은 사교육 중심이었고, 공교육은 그 역할을 부모에게 떠념겼다. 그러다 막상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시장이 무너지니 눈뜨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예전과 같은 예술교육의 호황기는 다시 오지 않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20~30년 전 혜택을 입었던 그 세대가 지금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시민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예술교육에 대한 향수가 짙은 세대다. 최근 30~4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다시금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렇게 훌륭한 잠재력을 가진 세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 세대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된다. 생활문화가 되었든 생애주기문화예술교육이 되었든 관심과 지원을 늘린다면 미래 세대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예술시민으로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역할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30년, 그 너머를 예술로 행복한 미래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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