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 지난해 11월 5개 정부투자기관에 후원금을 요청했다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공교롭게도 경실련이 13개 정부투자기관에 대하여 기관장의 판공비 사용내역 등의 공개를 요청한 직후여서 시민단체의 도덕성 시비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정부투자기관으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이 앞으로 열악한 재정을 어떻게 투명하게 확보할 수 있을지 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차제에 우리는 시민단체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보조금이나 후원금을 받는 것이 큰도덕적인 잘못인양 호들갑만 떨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민단체가 오해의 소지없이 투명하게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시민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기업을 감시해야 할 입장에 있는 시민단체가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후원금과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불독"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의회감시단체인 "커먼코즈"의 경우 연간 1,000만달러(120억원)의 예산중 85%를 22만 5,000명의 회원이 내는 회비(개인 30달러)로 충당한다고 한다.  그러면, 미국이나 독일, 이웃 일본등 선진외국의 경우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거의 후원금을 받지 않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도 시민단체 재정의 29.6%를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는 68.2%에 이르고, 이웃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재정의 39.6%를 정부와 기업의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주성수, 한국시민사회의 급성장과 정부와의 관계)  설상가상으로 선진외국과 달리 우리의 기부 풍토는 또 얼마나 척박한가. 99년 월간〈참여사회〉와 한길리서치가 서울시민 300명을 상대로 한 공동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7%만이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없는 시민단체"는 무의미하다. 시민이 주인되는 시민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정적 자립이 필수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원칙만 지킨다면 시민단체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보조금이나 후원금을받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누구로부터 돈을 받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받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이 여론조사에서도 47.1%의 응답자가 원칙만 지킨다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도 무방하다고 답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무조건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답한 24.7%를 훨씬 웃돌고 있다.  경실련이 "까마귀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쓰는" 우를 범하기는 했으나, 오얏나무 열매를 훔치는 도덕적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  지난 연말 경실련은 13개 정부투자기관장 판공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서 후원금을낸 기관이나 후원금을 내지 않은 기관이나 똑같이 비판대상에 포함 시켰다.  후원금 요청이 판공비 실태공개와 연계되지나 않았을까하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시민단체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옳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정부투자기관의 판공비 내역을 공개한 의미가 이번 사건으로 희석되거나 호도되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건을 시민운동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 한점 오해와 의혹이 없도록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시민단체 흔들기"라는 언론의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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