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영 울산대 교수·수학과

중고등학교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이 방학이 끝날 때쯤 되면, 자신을 ‘수포자’라 하는 학생들이 생기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미적분이다. 그 활용이 쉽게 보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달리, 미적분은 어려운데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적분도 기원전부터 그 유래를 볼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는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은 입체 즉 구의 체적과 표면적, 원추의 체적과 면적 등을 구하는데, 그 대상을 잘게 나누어 근사치를 구한 다음 더하는, 지금의 정적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다. 하여 미분과 적분 중 우리 속에 먼저 들어 온 것은 적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에 학문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초였던 17세기에 영국과 독일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벽하진 않지만 미분과 적분에 대한 이론이 발표됐다.

영국의 뉴턴은 천문학과 물리학에 관한 그의 저술인 ‘프린키피아’에서 미적분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였다. 미분을 운동하는 물체의 속도와 가속도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였으며 ‘유율’이라 불렀는데,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처럼 자연 법칙을 수학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반해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외교관으로 파리에 있던 시절 당대 최고의 과학자인 호이겐스에게 수학을 배운다. 라이프니츠는 미분과 적분을 뉴턴보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전개하여 발표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럽 전역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미적분학은 라이프니츠의 표현 방법을 쓰게 된다.

얼마 후 영국에서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미적분을 표절하였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과학자 그룹이 생기면서, 뉴턴과 라이프니츠, 영국과 유럽 대륙은 100년 가까이 학문적 불화를 갖는다.

미적분학은 오늘날의 인류 문화를 만드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이론이다. 매끄러운 곡선의 비행기, 자동차, 스마트 폰, 3D 프린팅, 고층 건물 등 미적분 이론이 쓰이지 않은 곳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미적분은 공학자와 과학자의 도구함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라고. 장선영 울산대 교수·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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