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복 울산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미술사학자 르네 위그(Rene Huyghe, 1905~1997)는 ‘눈은 말이 필요 없고, 그림은 이론이 필요 없다’고 했다. 또 ‘그저 보이도록 창조된 것’에 지나친 해석과 설명은 잉여(剩餘)라고 했다.

위그는 미술이론을 작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담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미술을 말하기 이전에 창조된 선사시대 이미지에서 이성에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힘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19세기 말 선사학자 카르타야크(Emile Cartailhac, 1845~1921년)는 ‘선사시대 그림은 감동이 충만한 작품이다. 당시 화가들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순록시대(구석기시대)에 독립적인 미술집단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선사미술의 동기를 ‘미술을 위한 미술(art for art’s sake)’로 보았다. 그가 생각했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년)가 말한 문명에 물들지 않고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과 다르지 않았다.

▲ 미술을 위한 미술을 주장한 선사학자 에밀 카르타야크.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때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불신했던 카르타야크의 견해는 선사미술에 관한 첫 번째 이론이 되었다.

그러나 예술지상주의자들의 바람처럼 실제 선사시대에 사회 관습이나 종교 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미술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순수한 예술행위를 위해서 구석기시대 화가들은 왜 하필이면 그토록 깊고 어두운 동굴을 선택했을까? 불멸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림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쌓여있다. 르와-꾸우랑(Andre Leroi-Gourhan, 1911~1986)은 ‘선사학은 어떤 사전배려도 없이 안개 자욱한 미끄러운 계곡에 발을 딛는 일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선사학자는 기껏해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속에 작은 이정표 하나를 세우려고 애쓰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상복 울산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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