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호 염포초등학교 교사

울산대공원 장미축제에 간적이 있다. 화려하고 향긋한 수많은 종류의 장미에 감탄하고 있는데 한 아버지와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의 대화가 내 귀를 잡아 이끌었다. “아빠. 여기 이렇게 많은 꽃에 어떻게 다 물을 줘요?” “뭐? 내가 어떻게 아노. 불만이면 니가 물 주던지 마.” 아이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경상도 아버지는 걸쭉한 대답으로 화답하였다. 아버지의 말에 아이가 더 이상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아이가 이 질문을 하였을 때 나도 마음속으로 상당히 궁금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장미축제는 기간이 5일부터 13일까지 열렸는데 이 많은 장미를 시들지 않게 물을 주고 가꾸는 방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미원의 관리자에게 궁금해서 물어보니 사방으로 물이 퍼지는 대형 스프링클러 장치로 물을 주는데 기계가 닿지 않는 곳은 직접 물을 주기도 하고 시든 것은 새로 옮겨심기도 하면서 관리한다고 하였다.

고재학 작가의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에는 유대인 부모와 한국 부모를 비교한 대목이 나온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를 수동적으로 키우는데 선수다. 질문을 자주 하도록 유도하기는커녕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던지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30·40대는 피곤하다. 치열한 경쟁사회가 주는 스트레스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고 잦은 야근에 아이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대답해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 부모에게도 그들의 직장 생활이 있고 바쁜 업무가 있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어떤 민족보다 잘 알고 자녀와의 대화와 토론이 자녀의 미래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자녀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CK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캘빈 클라인의 어머니는 캘빈이 어린 시절 여성의 옷에 관심을 갖고 만드는 것을 보고, 캘빈을 걱정하고 야단치는 대신에 격려해주고 그를 맨하튼의 디자인 스쿨에 입학시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헐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공상에 빠져 있고 영화에 관심을 갖는 스필버그에게 자신이 몰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훗날 스필버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창의적이고 독특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늘 대화를 충분히 나누어 주고 격려해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하였다.

보통의 부모였다면 자녀가 캘빈 클라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여자 옷을 찢어버리고, 영화 필름을 불태우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일반적인 부모 밑에서 캘빈 클라인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랐다면 우리는 지금 캘빈 클라인이 디자인한 패션아이템에 열광하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감격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 주인공의 역할이 패션디자이너일 수도, 뷰티크리에이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 부모님들은 그동안 어른의 눈높이에서만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방학. 아이와 함께 휴가도 좋고 휴식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의견과 생각에 경청할 수 있는 방학이기를 바란다.

정윤호 염포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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