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홍 사회부 기자

예전 대학시절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하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친구들 2명과 함께 방어동 원룸에서 3달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매일같이 문현문으로 출퇴근을 했다. 당시 2011년에 방어동은 밤 늦게까지도 손님들이 많아 밤에도 장사를 하는 가게가 많았다. 술집과 음식점에는 현대중공업 점퍼를 입은 청년들이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며 방어동 원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고, 아침에는 오토바이 부대와 함께 출근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머물던 원룸에는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가 고작 딸려있었는데도 월세는 60만원이나 줘야 했다. 식당에서 밥 한끼를 먹는데도 기본이 5000원이었다. 그런데도 방어동 원룸에는 일할 사람이 넘쳐 오히려 방이 모자랐다. 한 달 열심히 일하고 잔업까지 하면 기본 200만원 이상은 받았다. 월세는 세 명이서 20만원씩 나눠서 냈는데, 그때는 월세 60만원이 비싼 건지도 몰랐다. 근처 부동산에 들어가 요즘 한 달 월세가 얼마하냐고 하니 대답하길 꺼려한다.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찾아보니 15만원 짜리도 있다.

무려 7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방어동과 해양사업본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현대중공업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었다. 해양사업부는 문을 연지 35년만에 일감이 부족해 문을 닫는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해양사업부는 정말로 물량이 없어 텅텅 비었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며 실제로도 컸고, 정말로 커보였던 골리앗 크레인이 이제는 오히려 안쓰럽게 보였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지 않으면 차 댈 곳을 찾기 힘들었던 화암추등대길은, ‘이렇게나 넓었나’ 싶을 정도로 차량이 없어 어색할 정도였다. 요즘 방어동에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가게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외국인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동구청이 조성한 외국인 특화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상인들은 “죽겠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무리 보릿고개를 견뎌봐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느낌이다.

동구는 근로자 대부분이 현대중공업이나 사내하청, 그룹계열사 등 조선소 종사자다. 기억속의 방어동과 해양사업부, 최근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방어동과 해양사업부는 너무 많이 달라져있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정세홍 사회부 기자 aqwe0812@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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