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그리고 세상을 읽는다
5. 작괘천 계곡 작천정의 여름-물의 노래

▲ 2018년 8월. 작천정.104X48cm.한지에 수묵담채.

시는 작천정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괘천변 바위에 시인 묵객들의 이름과 함께 널려 있다.
말 그대로 물 반 시 반이다.
여름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물을 따라 흘러가고
흘러오는 시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놀면서 풍류를 즐긴다.
올여름은 덥다. 뜨겁다. 불의 기운이 넘친다.
울주군 삼남면 작천정.
그곳에 가서 작괘천이 노래하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물놀이를 즐기다
시를, 멋을 담고 돌아오자.

작괘천(酌掛川)은 ‘영남알프스’ 산 중 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내려온 물이 간월폭포를 지나, 신불산을 타고 내려와 홍류폭포에 쏟아진 물과 등억온천단지에서 합류한다. 이곳을 지난 물이 계곡 바위를 만나 편편하게 흐르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그러다가 여름날 장마철 폭우를 만나면 물은 솟구치면서 달려간다. 오랜 세월 지속적인, 물의 흐름은 돌과 바위에 흔적을 남겨놓았는데, 물이 고여 있는 형상이 마치 술잔(酌)을 걸어 놓은(掛)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작괘천이 되었다. 작천정(酌川亭)은 이 작괘천 계곡에 지어진 정자의 이름이다.

작천정은 1899년 언양군수였던 최시명이 이듬해 착공해 1902년에 완공했다. 작천정이 작괘천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은 한문학이 꽃을 피었고, 그 중에서도 한시가 많이 창작되었다는 점이다. 작괘천의 빼어난 풍광 때문에 작천정이 새워졌고, 작천정 앞에 흐르는 물 때문에 시가 나왔다. 특히 자연과 정서(의미)와 함께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즉 선경후정(先景後情)의 한시에서 아름다운 풍광은 필수적인 소재였다.

▲ 울주군 작괘천 계곡.

작천정 사계는 아름답다. 작천정의 봄은 벚꽃을 피워 날리면서 춤을 춘다. 그 황홀경에 빠져 봄날은 간다. 가을은 온갖 색깔로 물든 나뭇잎들이 산을 타고 내려와 작괘천변에 떨어지거나 물에 쓸려가는 풍경을 연출한다. 겨울이면 작천정은 바람 소리 따라 가는 산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명상에 잠긴다. 그렇다면 작천정의 여름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그것은 물, 흘러가는 물이다. 물은 술잔을 만들고, 물은 내를 이루어 작괘천이 되었다. 또 다시 물은 정자를 만들었다. 그것은 물이 만든 집, 물위의 집이다. 물은 더위를 씻어주면서 사람들을 작천정으로 초대했다. 사람들은 풍광과 함께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흘러갔지만 풍경과 글과 시는 남아있다. 그것은 물의 노래이다. 사람들은 바위에 이름을 새겼지만, 시는 풍경에 글을 짓고 물에 시를 새겼다. 아니, 물이 시를 짓고 시는 물을 따라 흘러가고 흘러온다.

현재 작천정 현판에는 상량문(1편), 기문(5편), 시(18수) 총 24편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중에서 구소 이봉선(이호경)의 <작천정 편액 시>는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 년 전 난정 이후로/ 작천정이 제일가는 누각일세./ 이토록 흰 바위가 또 있을까/ 그 사이로 맑은 내가 흐르네./ 달빛은 눈처럼 펄럭이며 비치고/ 여름 하늘에는 가을이 서렸네./ 이 경치를 어떻게 그려낼까./ 붓을 잡으니 근심이 일어나네.’(송수환 역)

이 시에 나오는 난정은 중국 샤오싱(소흥)에 있는 왕희지의 유적지 정자다. 왕희지는 이곳에서 <난정기>라는 명문을 남겼다. 그는 거위를 좋아해서 이곳에다 거위 연못이라는 뜻의 ‘아지(鵝池)’ 친필을 비석에 남겼다. 필자가 가서본 난정은 작천정의 풍광보다 못했다. 난정이 왕희지의 명성에 기대어 알려진데 반해 작천정은 풍광 그 자체가 풍류며, 시다. 구소는 흰 바위와 맑은 물 흐르는 작괘천을, 눈이 내린 듯 비치는 달빛을 노래한다. 그리고 기막힌 구절, ‘여름 하늘에는 가을이 서렸네.’에서, 여름날에 가을을 느낀다. 더운 여름밤 차가운 물에 몸을 담았다가 나온 청량함이다. 대단한 감각이다.

시는 작천정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괘천변 바위에 시인 묵객들의 이름과 함께 널려 있다. 말 그대로 물 반 시 반이다. 여름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물을 따라 흘러가고 흘러오는 시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놀면서 풍류를 즐긴다.

올여름은 덥다. 뜨겁다. 불의 기운이 넘친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물을 찾아 바다로 산으로 떠난다.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선풍기와 에어컨 밑에서 보낸다. 여름 더위가 감옥을 만든다. 차량들도 물을 마시면서도 열이 차서 열을 뿜어대며 달린다. 마르는 땅과 시들어가는 초목들과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은 노래다. 삶이다.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면서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즐겁게 하는 물이 만든 집이 있다. 울주군 삼남면 작천정. 그곳에 가서 작괘천이 노래하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물놀이를 즐기다 시를, 멋을 담고 돌아오자. 그림= 최종국 한국화작가

글= 문영 시인·비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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