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디지털미디어국 선임기자

며느리의 어원(語原)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들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라고만 나온다. 그럼에도 며느리에 대한 통설은 ‘메(밥)’와 ‘나르(다)’가 합쳐지면서 ‘며느리’가 됐다는데 무게를 둔다. 종부(宗婦)의 비극은 바로 메를 나르는데서 시작된다.

눈물 콧물 정신없이 흘리면서도 때가 되면 종가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며느리의 운명. 여북하면 ‘며느리 발톱’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개나 새의 발을 유심히 보면 뒤꿈치 쪽에 작은 발톱이 있다. 여인의 ‘부록’ 같은 인생을 축약하면 바로 ‘며느리 발톱’이 된다. 지난 1989년 이현세 원작의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라는 영화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추악한 남자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대상으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나영희 주연의 이 영화는 여성해방의 물꼬를 튼 계기가 됐다.

며느리밥풀꽃은 영화 못지 않게 꽃 그 자체가 한편의 비극이다. 이 꽃은 여자가 밥알 두 알을 혓바닥에 얹고 혀를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어느 몰락한 양반집으로 시집온 새댁은 모진 홀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어느날 저녁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는지 보려고 밥알 2개를 입에 물었는데 그만 들켜버리고 말았다. 며느리는 해명했지만 모질게 때리는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이듬해 무덤가에 입술같은 붉은 꽃잎에 흰 밥풀 2개가 붙은 ‘며느리밥풀꽃’이 피어났다. 한방에서는 옹종창독(癰腫瘡毒, 종기가 곪는 증상)을 푸는 청혈해독약으로 며느리밥풀꽃을 이용한다. 며느리는 죽고 해독약만 남았으니 그 슬픔이 더욱 절절하다.

▲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라는 꽃은 도랑이나 습지 같은데 자라는 풀인데, 꽃은 붉은 보석같다. 꽃과 꽃대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돋아나 있어 반바지 차림으로 가다가는 온 다리가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늘 어여쁜 며느리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시기심이 극에 달했다. 이에 밭에 용무를 보던 며느리에게 줄기에 잔가시가 잔뜩 나 있는 풀을 한웅큼 쥐어주었다. 말도 못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이 꽃은 음부가려움증, 냉대하증, 악창 등에 좋다고 한다.

며느리배꼽이라는 꽃도 있다. 그 모양이 글자 그대로 배꼽을 쏙 빼닮았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동네방네 우리 며느리 빼꼽 흉보기를 했을까.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 역대 최대인 7만여명의 여성들이 운집,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재명 디지털미디어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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