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로 하부 태화강생태문화갤러리, ‘갤러리’야, ‘개그’야?

▲ 이재명 경상일보 디지털미디어국 선임기자

울산시 남구 남산로 하부의 ‘생태·문화갤러리’. 이 갤러리는 지난 2009년 개장됐지만 아무도 이 곳을 갤러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150m 남짓한 남쪽 구간에는 태화강 물고기와 일제시대 태화강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이 10여년 동안 걸려 있고, 250m의 북쪽 구간에는 한시(漢詩) 2수와 노래가사 등이 대리석판에 새겨져 있다. 갤러리라는 안내판조차 없다.(5월10일 경상TV 보도)

당초 ‘태화강 생태·문화갤러리’는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지난 2009년 9월 14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개장했다. 울산시는 당시 이 갤러리를 ‘태화강(太和江)의 상징’이라고 추켜세웠다. 실제로 6500㎡(2000평)에 이르는 이 공간은 갤러리 또는 다양한 목적의 전시공간으로 기대를 모았다.

▲ 태화강생태문화갤러리. 남산로 하부에 만들어진 이 갤러리는 땡볕과 비, 눈을 막아줄 뿐 아니라 공간도 넓다.

 

시민들에게는 너무나 먼 갤러리
텅빈 10년 무심한 면벽(面壁)수도장

그러나 태화강 생태문화갤러리는 시민들에게 낯선 공간이었다. 우선 태화교 아래 공영주차장과 2㎞이상 떨어져 있고, 남산사 앞 ‘태화강 전망대’ 주차장도 너무 좁아 몇대 밖에 댈 수 없었다. 남산로 인도에서 생태문화갤러리로 갈 수 있는 길도 제한돼 있었다. 남산사에서 주유소 쪽으로 도로를 건너려면 무단횡단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생태문화갤러리는 도로 윗쪽이든 아랫쪽이든 행인이 거의 없었다. 가끔 운동하는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 워킹 등을 하지만 갤러리를 지나가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러다 보니 생태문화갤러리는 ‘갤러리’라는 애초의 위상을 떠받치지 못하고 추락, 비오는 날 비나 피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갤러리에 걸린 한시 ‘蔚山太和樓’, 공허한 메아리만
한 때 태화루의 영화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씁쓸

공무원도, 시민도 외면한 ‘태화강 생태문화갤러리’. 그런데 이 갤러리에 10년 동안 걸려 있던 한시(漢詩)가 있었으니, 바로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蔚山太和樓(울산태화루)’다. 칠언절구의 이 시는 서거정이 태화루(太和樓)에서 태화강과 남산 은월봉, 삼산, 학성 등을 바라보며 지은 것이다

▲ 생태문화갤러리 대리석벽에 새겨진 서거정의 한시 '울산태화루(蔚山太和樓)'

 

 

蔚山太和樓           

                         徐居正

蔚州西畔太和樓(울주서반태화루) 倒影蒼茫蘸碧流(도영창망잠벽류)

汗漫初疑騎鶴背(한만초의기학배) 依稀却認上鰲頭(의희각인상오두)

山光遠接鷄林曉(산광원접계림효) 海氣遙蓮馬島秋(해기요연마도추)

萬里未窮登眺興(만리미궁등조흥) 萬天風雨倚欄愁(만천풍우기난수)

울산태화루

울산서쪽언덕태화루
거꾸로선그림자푸른물에잠기어
너무나아득하여학을탔나했더니
어렴풋이알겠네, 자라머리에올랐음을.
산빛은멀리계림새벽에닿았고
바다기운은대마도가을에이었네
만리타향에서조망의흥취못다한채
하늘가득한비바람속, 난간에기대어시름젖네.

                작가 서거정(1420~1488)   역주 송수환

 

갤러리 한시(漢詩) ‘울산태화루’ 알고 보면
한자 오자·오기·맞춤법역행·번역오류 투성이

그런데, 생태문화갤러리에 새겨진 ‘울산태화루’의 본문이 완전히 엉터리다.
먼저 ‘울산태화루’의 제4구 依稀却認上鰲頭(어렴풋이 알겠네, 자라머리에 올랐음을)에는 ‘稀’(드물 희)자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희,비슷할 희)’를 잘 못 쓴 것이다. 依(의)자 앞에 ‘稀’자 대신 ‘俙’자를 대입해 풀어보면 ‘어렴풋이’라는 뜻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목판본에도 ‘俙’로 표기돼 있다.

▲ 갤러리 벽에 걸린 '울산태화루' 제4구는 稀(드물 희)자가 잘못 새겨져 있다. 원본인 목판본에는 '俙(희)'로 돼 있다.

 

또 제5구 山光遠接鷄林曉(산광원접계림효) 가운데 ‘遠’(멀 원)도 ‘近’(가까울 근)으로 고쳐야 한다. ‘遠接(원접)’이라는 말을 번역해보면 ‘멀리 접했다’는 의미인데, 논리상 안 맞다. 그러므로 ‘近接(근접)’으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목판본에도 近자로 나와 있다.

제6구 海氣遙蓮馬島秋(해기요연마도추) 중의 ‘蓮’(연꽃 연)도 ‘連’(이을 연)으로 써야 의미가 연결된다.

▲ '遠接'(멀리 접해 있다)이라는 표현 자체가 논리상 안 맞는 것이다. '가까이 접해 있다'는 '近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 밖에도 갤러리에는 울산부사 권상일의 시 ‘隱月峰(은월봉)’ 제3구 玉妃喚月峰嵯莪(옥비환월봉차아)의 ‘莪’(지칭개 아)는 ‘峩(높을 아)’로 써야 하는데도 ‘莪’자로 써놓고 있다.

한글로 번역한 시(詩)도 참으로 가관이다. ‘隱月峰(은월봉)’ 번역문 중 ‘초저녁과한반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간다. 알아본 즉 ‘한반’은 ‘한밤’으로 잘못 새겨진 것이었다. 또 갤러리에 걸려 있는 한시 번역문들을 보면 한글맞춤법을 깡그리 무시했다. 모든 단어를 한 줄로 이어붙여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경상일보TV 지난 5월10일 이같은 사실 확인
울산시, 묵묵부답 안하무인 일관

경상일보TV는 2개월 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울산시에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차라리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고 하는게 났겠다.

서거정은 ‘조선시대 한유(韓愈, 당나라)’로 불릴 정도로 문장이 탁월했다. 그의 명문들은 <사가집(四佳集>에 들어 있는데, 울산의 가장 대표적인 한시가 바로 ‘울산태화루’다. 그런데 이런 서거정의 시를 오타, 오기 투성이로 10년 동안 방치해왔다니, 도무지 믿기 어렵다.

요즘 인기 시인의 시를 이렇게 오타·오기로 방치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를 했을 것이다.

최근 남산로변에 동굴을 이용한 이색 체험지대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동굴피아’.
이 동굴피아는 태화강 생태문화갤러리 쪽에 입구가 나 있어 시민들이 옥동에서 바로 넘어와 동굴로 들어갈 수도 있고, 태화강변 갤러리로 곧장 갈 수도 있다. 남산사 인근 주차장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 태화강생태문화갤러리로 나 있는 남산동굴피아 입구

 

▲ 남산동굴피아와 태화강생태문화갤러리가 있는 태화강변 남산(은월봉). 중구 태화루에서 촬영

 

남산동굴피아, 태화강생태문화갤러리에 입구 나 있어
두 시설 연계하면 울산관광 시너지 효과 클 것

고려 성종(成宗)은 997년 태화루에 올라 은월봉과 태화강을 바라보며 연회를 즐겼다. 고려 명종 때는 김극기가, 충혜왕 때는 정포가 태화루에 올라 은월봉 달빛과 아름다운 태화강물결을 시로 남겼다. 그러고 보면 태화강과 은월봉, 태화루는 울산 도심관광의 금자탑(金字塔)이다. 태화강대공원을 중심으로 한 도심 ‘3종세트’라고나 할까.

‘풍류(風流)’라는 말은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를 합친 것이다. 사전에서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혹자는 풍류를 ‘바람을 읊고 달을 희롱한다’고 해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고 썼다. 그렇게 치자면 은월봉에 가리운 달을 희롱하고, 은비늘 반짝거리는 태화강 바람을 읊는 일은 울산 풍류의 정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태화루를 합하면 말 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 ‘3종세트’다.

남은 것은 남산로 하부 ‘생태문화갤러리’를 온전히 새로 만드는 것이다. 태화강과 은월봉과 태화루가 ‘울산관광’을 지탱하는 ‘솥발(鼎足)’이라면 남산로 생태문화갤러리는 태화루와 태화강과 은월봉 세가지 관광자원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이다.

다만 조선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을 우습게 알고, 울산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가진 시민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낮잡아보는 공무원들의 인식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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