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수 다담은갤러리 운영위원

이 땅의 모든 할머니, 어머니는 한때 누구의 딸이었다. 나는 이 땅에서 살았던 내가 만난 딸이며 지금은 한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금도 외진 시골길을 가다보면 나무를 기둥으로 하고 흙벽돌을 쌓아올린 건조대가 보인다. 이상민, 손돈호 화백이 이 풍경을 소재로 남긴 유화작품도 기억난다. 이 건물 아닌 건물을 보면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때 담배나 고추를 말리던 건조대로 사용되었다. 40여년 전의 일이다. 당시 땅 한 떼기 없었던 소작인들은 이 담배농사가 큰 수입이었다. 1년 동안 논을 빌린 소작인은 벼를 심어 수확한 40%는 지주에게 60%는 식구들의 1년 식량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조금씩 남겨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는 자식에게 보내면 약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나 담배농사는 양잠과 더불어 당시의 농민들이 현금을 쥘 수 있는 비중 높은 수입원이었다. 1월 말부터 사랑방과 비닐하우스를 거쳐 냉해가 사라진 5월이 들어서면 밭으로 옮겨졌다. 이때는 제법 형태를 갖추고 잎이 넓어졌다. 굵은 줄기에 달려 성장하는 이 식물은 잎을 수확하기 위한 작물이다. 이때부터 농부는 바쁘기 시작한다. 제법 더위를 느끼는 유월이 되면, 줄기 대에 늘어져 있는 잎을 수확한다. 아이들 노동력도 어른의 몫을 하며,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하는 시기이다. 6월 하지전까지 수확을 마쳐야 했다. 마른 줄기 걷어내고 논을 갈고 물을 대어서 모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등교하지 않은 한 아이 집을 방문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런 잎 뭉치가 흔들거리며 움직인다. 그 잎 뭉치의 종착지를 따라 갔었다. 집 마당에 너부러져 쌓여있는 잎들을 엮여서, 줄에 거꾸로 늘어진 것 들이 마당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아이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한쪽에 서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당에 앉아 잎을 엮으면서 나를 힐끗 보더니 못본척,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마당에 들어서면서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한 말로 던졌다. “남동생은 등교를 했는데 아이가 학교를 오지 않아 집으로 들렀습니다” 어머니는 “선상님 지금이 제일 바쁜 철이라예, 그래서 큰아이 손도 필요해서 오늘은 핵교(학교)를 가지 말고 집안 일 도와라고 했심더. 그리고 내일은 꼭 보내겠심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마루에 앉았다. 어머니는 우물로 가서 물 한 사발을 떠서 나에게 권했다. 물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켜고 아이에게 “어린 네가 부모 일 돕는다고 고생이 많구나. 오늘은 열심히 돕고 내일은 학교에서 보자”

그 아이는 또래보다 늦게 입학했다. 농사일을 도우려 집에 두었던 딸아이를 3~4㎞의 면소재지에 중학교가 있었기에 2년 늦게라도 입학을 시킨 것이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 보다 덩치가 컸었다. 교복의 단추를 잠그고도 앞섬은 터질 듯 벌어져 있었고, 바지의 옆구리는 후커가 잠기지 않아 천을 덧대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교육(敎育)은 나라 번영(繁榮)의 초석(礎石)이다’ 교무실 벽에 붙어 있는 문구는 잊혀지지 않는다. 이 학생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많은 여학생들은 ‘일 하면서 공부하는’ 직장으로 갔었다. 원단공장, 신발공장, 수산가공공장, 그리고 재봉공장 등 회사 겸 학교인 것이다. 낮에는 생산직으로 작업하며 밤에는 학교공부를 시켰다. 당시 교복원단을 생산하는 직장(학교)에는 입사(입학)하기가 까다로웠다. 학교성적이 상위권이어야 하며 몸도 건강해야 했다.

이들의 수입은 고향 집으로 보내졌다. 오빠, 남동생이 공부하도록 지원금을 보낸 것이다. 또한 부모가 토지를 마련하는데 보태어지기도 했다. 당시 나라경제가 도약기에 들어설 무렵, 일자리가 넉넉지 않았으며, 이런 시기에 가족 남매 중 누구의 희생으로 경제적 바탕을 마련하여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누나의 힘도 매우 컸다. 아니면 여동생의 뒷바라지로 오빠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모두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기다. 그러나 당시 가족 중 집안을 일으킨 누나, 여동생, 고모들의 희생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를 좋아하면 코가 빠진다.

박현수 다담은갤러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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