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입추가 지난지도 벌써 열흘째다. 하늘은 한층 더 높아졌건만 한 낮의 폭염은 아직도 거칠 줄을 모른다. 숨숨이 익어가는 저 푸른 들녘들도 올 여름은 견디기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고통을 견디는 무수한 생명체들,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마디’(節)가 만들어 지고 있을 것이다. 견딤의 순간을 지나서야 만들어 지는 것이 마디이기 때문이다.

지금 SNS에서는 ‘현재의 한국을 헬 조선이라 빈정거리지 말라’는 한 대학교수의 호소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헬 조선이란 젊은이들의 꿈이 사라진 오늘의 한국을 일컫는 말이다. 꿈이 사라진 곳, 단테도 ‘신곡’에서 ‘지옥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고 했다. 별이 사라진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고통을 던져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참할 때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기 때문이다.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을 배워요(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비틀스의 노래 블랙버드(blackbird)의 한 구절이다. 우린 모두가 ‘부러진 날개’의 주인공들이다. 누구도 평생을 평탄하게 살 수만은 없다. 누구에게나 처참한 순간은 있기 마련이며 이는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바로 견딤이 필요한 시기다.

시인 정호승은 ‘대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것은 바로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내가 휘청거리면서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내 눈물에도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삶의 고비마다 생겨나는 마디는 바로 인간정신(human‘s mentality)의 결정체다. 견딤 없이 생겨난 마디는 없다.

연륜이 깊어질수록 마디는 늘어가고 그 간격은 점점 더 좁아진다. 마디의 숫자는 견딤의 상징이며 굳건함의 상징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끊어진 길을 연결시키는 것도 마디고 사라진 길을 다시 불러내는 힘도 마디에서 나온다. 마디가 있어 우리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오늘을 견디는 젊은이들에게도 지금쯤 또 하나의 마디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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