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독서회 사건 검거등

항일행적 기록사실 밝혀

본보 ‘…울산유사’로 소개

▲ 울산출신 항일운동가 이미동. 지난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치열하게 벌였던 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출신의 이미동이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11년생인 이씨는 동래고보 시절부터 노동청년운동을 펼치다가 치안유지법으로 구속되는 등 옥살이를 여러 번 했다.

1930년에도 대송동농업조합원으로 일하면서 농민의 권익에 앞장서는 등 항일운동을 펼치다가 조합원 5명과 함께 예심에 회부되는 등 2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일제 말에도 항일단체인 독서회에 가담 항일 운동을 치열하게 펼쳤으나 그동안 그의 행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유공자로 추서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울산시가 2008년 발간한 <울산독립운동사>에도 그는 미서훈자로 남아 있었다.

그의 항일 행적이 밝혀진 것은 본보를 통해서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가 쓴 연재물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2017년 8월7일자)에는 일제강점기 발간된 동아일보에 실린 이씨의 항일행적이 소개됐다.

동아일보에는 1930년 8월 그가 울산청년동맹대송지부 설립 시 임시의장으로 활동한 내용과 1935년 3월 울산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된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대송마을에 살면서 이씨의 항일운동을 지켜보았던 지벽해(92)옹은 “이미동 어른은 일제강점기 우리 마을에서 항일운동을 치열하게 벌여 왜경까지도 두려워하면서 쉽게 그를 체포하지 못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는데도 그동안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유공자가 되어 우리 마을의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미동의 딸 이해자(부산거주)씨는 “그동안 아버지의 서훈을 위해 가족들이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항일운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어려움이 컸는데 지난해 경상일보가 아버지의 항일 기록을 찾아내어 보도해 이번에 서훈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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