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서 성폭행 혐의 정치인의 무죄판결
사법부가 변화된 성의식 반영못한 결과
성범죄 처벌에 대한 정교한 입법 필요

▲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모든 인간은 성적 존재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보편적 본능이며, 욕구이다. 보편적 욕구이기에 권리인 동시에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관계의 문제이다. 인간의 기본욕구 중 식욕, 수면욕은 개별적인 것으로 만족감을 획득하기 쉽지만 성욕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관계의 문제로 유지되기 어렵고 충족되기도 어렵다. 또한 성욕은 지극히 사적이며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행위이다. 그러니 사랑의 행위로서 성관계는 상대를 배려하고 살피는 섬세함과 정성을 지극히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인류 이후 그렇게 많은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사랑이었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주제이며 관심사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올 여름 폭염에 온열질환자가 늘어나고 도심에는 살수차가 등장하고, 농작물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국이 35도를 넘고 열대야가 지속되는 111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이다. 그 폭염 속에 인면수심의 성욕과 관련한 사건들이 폭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카톨릭 교구에서 70년 동안 신부 300여명에 의한, 아동 1000여명에 대한 성범죄가 반복해서 발생한 사건이 드러났다. 10대 친딸 2명을 2년간 9차례나 강제 추행하고 성폭행을 저지른 40대 친부에게 춘천재판부가 항소심에서 징역 9년 및 20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선고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영향력 있던 정치가에 대한 무죄판결과 이에 대한 거센 항의집회까지,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특히 지난 주말 집회를 거세게 가중시킨 정치가에 대한 무죄판결은 우리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던 ‘미투(#MeToo)’ 운동 이후 1호 판결이었다. 전반적으로 ‘직장과 각종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 다수는 면죄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염려와 함께 ‘한국사회 성평등의 역사를 수십 년 후퇴시켰다’ ‘성평등한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했던 여성계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다’는 평가이다. 또한 성폭력과 관련한 ‘위력관계와 위력행사, 피해자다움, 성적자기결정권, 꽃뱀’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쏟아내고 있다. 위력에 의한 권력형 성폭행이든 불륜이든, 도덕적 책임과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갑론을박의 이 와중에 염려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성폭력을 폭로한 용기 낸 피해자들에 자행되고 있는 2차 피해이다. 실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려운 사건에서는 명예훼손과 무고죄에 역풍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3월 각국의 성평등과 여성 인권 보호 등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점검하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8차 심의에서 군나 벅비 위원은 “2012~2016년 한국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2109건의 성희롱 사건 가운데 9건만 기소로 이어졌다”며,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이 가해자의 처벌없이 폭로로 그칠 수 있음을 암시한바 있다. 루스 핼퍼린 카다리 부의장은 “한국의 기술, 경제의 진보와 견주어 여성의 권리는 낙후돼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었다.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며 변화된 한국사회의 성의식과 성문화를 반영하지 못한 사법부의 판단과 관련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국회의 입법 활동,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성의식과 성문화 부재가 아쉽다.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해외에서는 No means No rule(아니다라고 했는데 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처벌하는 규칙), Yes means Yes rule(명확한 동의가 있는 성관계 외에는 모두 처벌하는 규칙)과 같은 사례들이 적용되고 있다.

이참에 성 범죄 처벌에 대한 보다 정교한 입법 논의가 시작되고, 사회 전반에서 성문화와 성의식을 들여다보고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인터넷과 SNS를 통한 음란물과 성 상품화에 노출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인간이 가진 숭고한 사랑, 그 사랑의 행위로서 이루어지는 성관계가 왜곡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적 존재로서, 인간본성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모든 성관계에는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보편적 가치가 확인되었으면 한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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