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 표현할 자유는 중요
의견개진 못하면 민주사회 위협
건강한 사회는 여러 목소리 인정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얼마 전, 50여명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다. 가족밴드에 사진을 올렸더니 조카가 댓글을 달았다. ‘모두 오른손 주먹 쥐고 어깨 위로 들고 파이팅 하는 모습인데 왜 삼촌만 가만히 앉아 찍었느냐’는 것이었다. 답글을 달았다. ‘튀어 보이려고…’ 기억해보면 모두가 팔 들고 주먹 쥐는데 나만 가만 있기 위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단체사진을 보면 거의 ‘주먹 쥐고 파이팅’이다. 노조투쟁이나 출신고교 교가 제창시 보는 모습이다. 군복만 안 입었지 군대 단체사진을 꼭 닮았다. 나는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무채색 획일주의’를 느낀다. 각자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모습과 표정을 지으면 안 되나? 세상은 자유와 개성(個性)존중의 고지를 향하여 숨 가쁘게 전진하고 있는데, 우리만 혹시 거꾸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술자리에 가면 한사람이 권주사(勸酒辭)를 늘어놓고 약자(略字)로 이루어진 구호를 선창하면 모두가 큰소리로 떼창한다. 그것도 돌아가면서. 그리하여 술자리에 참석하려면 미리 권주사와 구호를 준비해가야 한다. 예를 들어, 한사람이 지적당하면 “저는 ‘노발대발’을 선창하겠습니다. 노인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술자리 집단획일주의의 한 모습이다. 역사 깊은 ‘위하여’나 ‘건배’ 제창은 귀엽기 조차하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 같은 행동을 중시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2002 월드컵 유치를 놓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한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을 상대로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중에 어느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였다. 우리나라에서의 결과는 ‘한국에서 열려야 한다’가 99.8%, 무효가 0.2%였고, 일본에서의 결과는 ‘일본에서 열려야 한다’가 70%, ‘한국에서 열려야 한다’가 30%였다고 기억한다. 당시 한국인으로서 일본 개최를 주장하면 매국노로 몰려 몰매 맞을 분위기였다. 그때 나는 우리의 획일주의가 은근 걱정되며 오히려 ‘우리가 일본에 졌다. 주장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인식의 폭에 있어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마음 한뜻은 단체 스포츠에서는 중요할지 몰라도, 여러 마음 여러 뜻이 표현되고 인정될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집단적 획일주의 행태가 사회에 만연하는 것을 나는 진정 두려워한다. SNS상에서 어떤 이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단적으로 악플을 달고, 거의 흥분(興奮)에 가까운 인민재판(?)식 여론의 돌팔매질이 나는 두렵다. 이러한 상황이 무서운 나머지 남들과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왕왕 본다. 민주주의의 위협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한진그룹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이 온 사회를 뒤흔들었다. 회장의 둘째딸이 회의 중 물컵을 던진 일로 촉발된 사건은 외국인 불법고용, 밀수, 부정 편입학, 탈세, 인격 모독 의혹 등을 줄줄이 도마 위로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온 국민은 한목소리로 그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화살을 쏘아대며 범죄자로 몰았다. 그들의 행위에 대한 분노와 돈 많은 기업인에 대한 미움(?)이 합쳐져 모두를 구속시켜야 한다는 여론까지 형성되었다. 검찰은 이에 동승하였고, 언론은 국민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어떤 부분은 엄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지 범죄로 다스릴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 있더라도 말할 수 없었다. 나도 갑질을 증오한다. 그러나 더 증오하는 것은 다수와 다른 생각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갑질에 대한 공분(公憤)보다 다른 의견을 말할 자유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어떤 이는 주먹 쥐고 파이팅하고, 어떤 이는 하트를 그리고, 어떤 이는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어떤 이는 그냥 웃고 있는 자유 만발한 총천연색 단체사진을 볼 수 있으려나?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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