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브뢰이(Henri Breuil)의 공백은 루와-꾸우랑(Andre Leroi-Gourhan, 1911~1986년)으로 채워졌다. 루와-꾸우랑은 직감이나 주관적인 해석에서 탈피해서 그림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선사인류의 정신세계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동굴벽화들이 무작위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통계적 분석을 통해 동굴 중앙에 말과 들소가 배치되고, 그 주변에 매머드와 사슴, 야생염소를 그리고, 보다 깊은 곳에 곰이나 사자, 코뿔소 같은 맹수가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말과 들소가 대체로 쌍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남성(말)과 여성(들소)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동물뿐만 아니라 기호에도 동일한 개념을 적용해서 삼각형이나 사각형, 타원형 같은 닫힌 기호는 의미론적으로 여성으로, 점과 막대기, 빗금 선 등은 남성적 기호라고 보았다.

▲ 브뢰이의 설명을 듣고 있는 루와-꾸우랑(낭테르고고학연구소 ARSCAN).

동물-기호, 동물-사람, 사람-기호로 관계를 확장해 궁극적으로 남성-여성이라는 이항적 대립(binary oppositions) 구조로 파악했다.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과 기호의 배치가 일정한 구조적 원리에 따라 배치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루와-꾸우랑의 이론은 파리인류박물관에 함께 재직했던 민족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년)의 연구와 유사점이 많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언어학 개념을 신화에 적용했고, 루와-꾸우랑은 선사미술에 도입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의미를 알 수 있는 신화에서 구조의 원리를 밝히려고 하였고, 반대로 루와-꾸우랑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선사시대 그림을 구조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 것이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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