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목숨걸고 구한 아이 기현 통해
상실감 견디던 부부 앞에 나타난 진실
절제된 슬픔 선보여…오는 30일 개봉

▲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를 마주하는 부모’라는 딜레마 속에 영화는 극단의 고통과 상실, 슬픔 등을 보여준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아들을 잃은 성철(최무성 분)은 일상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얼굴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가끔 무거운 한숨을 푹푹 내쉬지만, 여느 때처럼 헌 벽지를 북북 뜯어내고 새로 단장할 준비를 한다. 인테리어가 그의 일이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각종 서류를 준비하며 의사자(義死者) 지정도 추진한다.

아내 미숙(김여진)은 다르다. 고통을 삭일 수가 없다.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둘째를 임신하려 남편을 설득한 것도 죽은 아들이 그토록 원해서다.

각자 방식으로 아들을 추모하며 형벌과 같은 날들을 보내던 부부의 감정에 변화가 생긴 건 기현(성유빈)이 나타나면서부터. 아들이 죽어가면서 살린 아이다.

성철은 어렵게 혼자 사는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도배일을 가르치고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책도 사준다. 기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미숙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어느덧, 세 사람은 함께 소풍도 가고 한가족처럼 지낸다. 기현이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세상에 제 새끼를 잃은 고통만큼 더 큰 고통이 있을까.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를 마주하는 부모’라는 딜레마 속에 영화는 극단의 고통과 상실, 슬픔 등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차고 넘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감정은 부부의 들숨과 날숨을 통해 차곡차곡 실려와 서서히 폐부를 적신다.

특히 부부가 한 공간에 있을 때, 슬픔은 서로 부딪히고 증폭돼 공명한다. 관객은 때로 성철에게, 때로 미숙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같은 슬픔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는 그런 슬픔을 미리 체화해보는 시간이 될 듯하다.

마치 1부와 2부로 나뉜 듯하다. 부부와 기현과의 만남을 그린 전반부와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후반부는 색과 결이 전혀 다르다. 이런 구성은 전반적으로 담백한 흐름에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감정의 진폭을 크게 한다. 그 흔한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도 없다. 한 번쯤 아들의 사고 현장을 보여줄 법한데, 대사와 여백으로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대신에 남의 고통에 무심한 주변인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다. 미숙의 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 보상금이 얼마냐”고 묻고, “잘됐다. 이제 괜찮다”고 말한다. 섣부른 위로와 배려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흉기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한다.

학교, 교사,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행여 자기네들에게 불똥이 튈라 몸을 사리고,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실을 알게 된 부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은 영화가 끝난 뒤 다시 한 번 마음을 때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출신 신동석 감독 장편 데뷔작이다. 8월30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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