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을 찾아서(10)-북구 화봉동 사청마을 파평윤씨(坡平尹氏)

7번 국도를 타고 효문사거리를 지나 경주쪽으로 가다보면 북구청을 지나 옛 동울산세무서를 알리는 간판을 만난다. 화봉동 초입으로 예전엔 사청(泗淸)마을로 더 많이 불렸던 곳이다. 더 먼 옛날에는 사청(射廳)으로 불렸던 점을 볼 때 이곳은 아마 활터였던 모양이다.

 근대화 이전까지 이곳은 동쪽 산밑의 화산(化山)마을과 합쳐 파평윤씨 60여 가구를 포함해 120여 가구가 있었으나 지난 92년 구획정리가 이뤄지면서 지금은 셀 수도 없다. 아파트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것은 물론 구청과 학교 은행 등이 들어서 이제는 도심과 다를 바 없다. 이곳이 파평윤씨 영은공파(永隱公派) 사청문중(泗淸門中)의 집성촌이다.

 파평윤씨는 고려건국에 한 축을 담당한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로부터 시작된다. 태사공이 파평윤씨의 시조이다. 태사공의 탄생은 마치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에 못지 않다. 경기 파평(지금의 파주) 파평산 기슭의 용연(龍淵)에 난데없이 사흘 밤낮을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천둥과 번개가 쳤다. 이를 이상히 여긴 마을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비니 연못 한 가운데 금궤짝이 있어 건져보니 양쪽 겨드랑이에 81개의 잉어비늘이 난 어린 태사공이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청의 윤씨들은 봄 가을 경북 안강의 묘소와 이곳을 찾는다.

 시조인 태사공을 비롯해 척지진국(拓地鎭國)의 위업을 달성한 5세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조선조에 들어서는 파평군(坡平君)의 봉작을 받은 15세 소정공 윤곤(尹坤)(16파로 분류될 때 사청문중은 소정공파에 속한다), 성종때 영의정을 지낸 18세 영은공(永隱公) 윤흥상(尹興商) 등이 사청문중의 대표적 선조들이다.

 고려와 조선조에 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문세가로 손꼽히던 파평윤씨들은 국모를 가장 많이 배출한 문중일 뿐 아니라 공이 커 문종, 성종, 선조, 숙종, 영조 등 다섯 국왕이 문숙공의 후예에게는 군역과 천역을 사면하도록 한 전교(傳敎)를 내렸다.

 문중 회장을 맡고 있는 입향조의 16세손 윤좌상(尹佐相·81)옹은 "어느 문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섯 국왕의 전교를 받았다는 것을 파평윤문들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평윤씨들이 500년전 이곳 사청에 온 것은 연산군때 갑자사화(1504년)의 난을 피해서이다. 연산군이 생모인 윤비의 폐위당시 이를 막지 못한 당시 영의정 영은공을 추죄(追罪), 멸문지화의 위기를 당하자 영은공의 12조카 가운데 여섯째인 윤명이 화를 피해 이곳에 정착,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했다. 선무랑공(宣務郞公) 명 할아버지가 사청문중의 입향조가 된다. 명 할아버지의 두 아들 가운데 둘째가 전남 나주로 가 나주문중을 이뤘다.

 함께 난을 피해 영남지역으로 피한 명 할아버지 바로 위 형인 혁 할아버지는 지금의 울산 남구 신정동에, 둘째 동생인 신(信) 할아버지는 부산에서 각각 자리를 잡았다.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온 지 2년만인 1506년 중종반정으로 신원복작이 이뤄졌다.

 그후 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 겸 진주판관을 역임한 입향조의 고손자인 23세 윤홍명(尹弘鳴), 형제가 나란히 진사와 성균관 생원을 지낸 30세 윤병호·병이 형제도 다 사천마을 윤씨들의 선조들이다.

 지난 92년 토지구획정리 당시 입향조 명 할아버지와 선조들을 모신 재실이 구획정리지구에 편입되면서 헐려 지금은 옛 동울산세무서 뒤로 옮겨와 회관을 겸하고 있다. 사청문중은 또 문중 부인회가 구성돼 있어 문중의 행사를 도맡아 할 뿐 아니라 고부간, 동서간 정이 두텁다. 사청문중은 울주의 온산 덕신, 경북의 외동 석계, 용강 등지에 집성촌을 이뤄고 있다.

 사청문중의 종손인 34세 윤승한(尹承漢)씨가 세거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차종손 주상(周相·44·울산향교 전의)씨가 문중의 총무로 대소사 일을 돕고 있다.

 현재 입향조의 16~17세손이 가장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울산 북구 윤두환(尹斗煥) 의원이 사청문중이다. 또 국민은행 지점장을 지낸 환구(煥久)씨도 집안이다. 사천군 전 건설과장 문석(雯錫)씨는 큰 아들 승용(承容·철학박사·서울대학원 출강), 둘째아들 인태(寅台·울산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셋째 아들 인발(서울 천호중 교사) 등 3형제를 모두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조선일보 기자와 경상일보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지낸 윤현걸(尹玄杰)씨도 사청문중이며, 울산시 건축사협회장을 지낸 윤승록씨와 승훈(承勳), 승문(承文)씨, 올해 초 작고한 승보(承保)씨 등은 건축사로 활동중이거나 활동했다.

 문중회장인 좌상옹은 동장을 지냈으며, 큰 아들 병두(炳斗)씨는 육군중령으로 예편했고 작은 아들 병년(炳年)씨가 중구청 자치행정과장을 맡고 있다. 농소면장과 울주군 산림과장을 지낸 윤월석(尹月錫)씨와 부산시의원인 윤승민씨도 사청문중이다. 윤부남(尹富男)씨의 아들 병국(炳局)씨는 한의학박사로 현재 삼산동에 한의원을 운영중이며, 윤복상(尹福相)씨의 장남 병훈(炳勛)씨는 변리사로 일하고 있다. 또 경주 외동읍장과 한나라당 경주지구당 사무국장을 지낸 윤인호(尹仁浩)씨와 경주시의원으로 활동한 윤의홍(尹儀洪)씨, 그리고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윤종수씨, 대구대 윤무홍 교수, 해운대 그랜드호텔 윤병인 사장도 문중의 일원이다. 서찬수기자 s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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