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예보 만큼 경제전망도 후폭풍 걱정
암운 드리운 울산경제 대비책엔 소극적
자칫 채찍비 맞고도 비설거지 뒷전일라

▲ 이태철 논설위원

기상관측이래 사상 최고라는 올 여름 폭염이 조금 누그러지는가 싶었더니 느닷없는 폭우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짧은 시간동안에 좁은 지역에서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집중호우 형태로 곳곳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장대비, 작달비로도 불렸던 집중호우가 ‘물폭탄’이라는 무시 무시한 별칭을 얻게 된 연유를 실감시키려는듯 맹렬한 기세다. 무너지고, 잠기고…. 난리통도 이런 난리통이 없다. 2년전 태풍 ‘차바’가 몰고 온 물난리에 혼쭐이 났던 울산이다. 생계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했던, 아직도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지 않은 시민들로서는 더없이 두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8월 마지막 주, 연일 비 예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별로 호우주의보와 홍수주의보가 교차하고 있지만 뒷날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이 예상을 뛰어넘은 ‘게릴라성 집중호우’에 허둥지둥하는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8일만 해도 그렇다. 호우 예비 특보도 없었던 서울에 3시간 동안 60㎜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퇴근길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아야 했던 시민들이었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동안 60㎜ 또는 12시간 동안 110㎜이상일 때 발효된다. 호우경보는 3시간 동안 90㎜, 12시간 동안 180㎜이상일 때 내려진다. 기상청이 28일 서울에 호우경보를 내린 건 오후 7시40분이지만 이미 오후 6시40분 기준으로 3시간 동안 서울 도봉구에는 69㎜, 강북구는 66㎜, 은평구는 60㎜를 기록했었다. 지난해 8월 있었던 감사원 감사에서 기상청 비 예보 적중률이 46%에 그쳤던 사실이 재조명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곳곳에서 ‘빗나간 예보’를 질타하는 성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막을 수 있었던 피해에 대한 원망의 뜻이 담겨 있다. 순간적으로 ‘비갈망’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장마철을 앞두고 비를 맞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말로는 ‘비설거지’가 있다. 비가 오려 할 때 비를 맞아서는 안 될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말한다. 천둥 번개가 치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징조를 보이면 얼른 장독대를 덮든지, 널어놓은 곡식을 집안으로 들이든지 하는데 바로 그것이 비설거지였던 것이다. 정확한 예보가 뒷받침될때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 측정 및 수집된 기상자료를 바탕으로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의 기상조건을 추정해 예시하는 기상예보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요즘 세상이다.

꽃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고 한다. 사람은 더 그렇다. 정책은 또 어떤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소용이 없다. 앞으로 닥쳐올 일을 예상해 미리 알리는 ‘예보’와 관련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안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력과 장비부족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등의 뒤늦은 ‘자성’과 ‘후회’로 넘어가기에는 결과가 너무도 끔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예보만큼이나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다. ‘경제전망’으로, 먹고 사는 일이 달려 있다보니 작은 변화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

울산경제에 먹구름이 끼다 못해 폭우에 쓸려내려가기 직전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중심에 있는 조선·해양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마저 영업실적부진에 휘청이면서 울산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울산시를 비롯해 지역경제계 스스로도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무엇이 걸림돌이고 문제인지 파악하고 있다. 경쟁력 약화로, 방치할 경우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도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비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눈 앞의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채찍처럼 쏟아진다는 ‘채찍비’를 맞고서도 ‘비설거지’는 여전히 뒷전으로 미루는 형국이 지속될까 걱정이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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