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희 한지애호가·자영업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보이지 않는 우연과 필연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가령 우연히 길을 스쳐가는 인연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우연일 것 같지만 좀더 깊게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사람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인연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 같다.

필자는 살아오면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경험해 봤다. 첫 번째가 종교에 대한 개념이었다. 누님께서 천주교를 믿으면서 오래전부터 나에게 전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계속 거절해오다가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천주교에 입당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연처럼 다가왔지만, 나에게는 하느님과의 인연이 필연처럼 정해져 있었던것 같다.

옛날 어느 선사로부터 우리가 평소에 허투루 보는 돌 하나 풀 한포기에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우리에게 다가오는 생활 속의 일들이 조그만 것이라도 우연일 것 같지만 다 필연을 동반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말복때 부산 누님의 초대로 아버님을 모시고 해운대에 있는 가장 비싸고 맛있다는 삼계탕 집으로 갔다. 맛있게 삼계탕을 먹고 나오다 아버님이 평소에는 물건을 잘 챙기시는데 그날은 앉으신 자리에 손에 들고 다니시던 한지 부채를 두고 밖으로 나가시는게 아닌가. 그래서 얼른 부채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와서 문을 나오는데 자동문에서 잠깐 스치듯 안경을 부딪히고 말았다. 안경태가 휘어져서 쓰지를 못하게 되자 순간 공짜로 비싼 삼계탕을 얻어 먹었더니 이렇게 또 안경고치는 값으로 나가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찜찜하였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스스로 부주의함을 책망하면서 주위에 안경점을 찾았는데 안경을 맞추는 동안 시간이 남아 옆건물에 있는 어느 매장으로 들어갔다. 누님은 나에게는 가을 와이셔츠를, 아버님께는 운동할때 신으라고 편안한 운동화를 사주셨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가을 와이셔츠가 하나 필요해서 사고 싶었는데 생각하지 못한 안경사건 때문에 셔츠가 하나 생긴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근 해수욕장에서 아버님과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져 모처럼의 부자, 부녀간의 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늘 있었던 일이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안경이 휘어진 것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부자, 부녀간의 시간은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로 인해서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겠지만 이것을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어 보면, 아! 이런 필연이 일어나기 위해서 처음에 이런 우연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주면 이 세상에 어렵고 복잡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우연과 필연! 종교에서는 우연을 미리 표징으로 나타나게도 하고 필연을 운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늘도 우리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우연을 잘 이용만 한다면 생각지도 않은 아름다운 필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무한한 희망을 걸어본다. 우연과 필연을 정리해보면 우연이란, 필연의 다른 이름! 우연이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 우연처럼 보이고 느껴지지만, 실은 우연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 필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연과 필연은 한 몸이다.

이철희 한지애호가·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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