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결정·무죄판결 받은 피의자라도
마녀재판식 여론에 몰리면 범죄자 몰려
무죄추정 헌법정신으로 인권 보장해야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언젠가 KTX열차 객실의 모니터 화면 뉴스에서 7~8년전 특정 언론의 의혹 제기로 ‘특검’에 의한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으나 의혹사실에 대해 무혐의 처분된 인물을 지칭하면서 “××× 의혹 ○○○씨”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거 사건의 당사자였다는 점을 드러낸 것인데 명예훼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 및 재판의 대상이 되면 방어권 행사는 물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비난과 명예 실추를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수사과정의 피의자와 피내사자, 재판상의 피고인을 바로 범죄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이나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증거부족 때문이라고 할 뿐 결백하다고 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공인 등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인 경우나 특정한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공격당하는 경우 비록 무혐의 결정이나 무죄 판결을 받아도 옹호 세력이 있거나 세상과 현명하게 타협하지 못하면 덧씌워진 굴레를 벗기는 쉽지가 않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유죄의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 발견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인권보장을 위한 장치이지만 원칙이 지켜지는 지는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발표는 수사 대상자를 유죄라고 전제하는 인상이 짙다. 수사과정에서 내용이 외부로 흘러 나오는 경우도 많다. 법원의 영장기각에 대해 범죄자를 풀어주기라도 한 듯이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은 범죄자로 취급받을 뿐 무죄 추정을 받는 인권의 주체가 아닌 것이다.

언론에 압수수색 장면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수사기관에 불려가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유죄 추정의 분위기는 고조된다. 수사 대상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은 언론에 의한 공개재판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일까.

시시각각으로 수사 진행상황을 보도하는 것에 더하여 소위 신상털기식 보도라도 하게 되면 수사 대상자는 사실상 재판에 앞서 여론으로 단죄되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보도를 넘어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인 기획 보도가 이루어지고, 요즈음 뜨는 종편 방송의 입살에 오르기라도 하면 시청자들 뇌리에는 범죄자 이미지로 각인된다. 익명의 방호벽뒤에서 총질을 해대는 SNS상의 악성 댓글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지지 세력이라도 있어 여론전으로 도와주거나 합리적 판단으로 언론상에서 도움을 주는 응원자라도 운좋게 만나지 못하면 무혐의 결정이나 법원의 무죄 판결은 이미지를 반전시키지 못한다. 무고함이 밝혀져도 그에 관한 보도는 없고, 수년이 지나서도 앞서와 같은 행태의 언론 보도마저 이루어진다. ‘열명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명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법언이 무색하다.

언론에서는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도해야 함은 물론 무혐의나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 명예실추가 되지 않도록 이들의 입장을 충분하게 반영해 주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수사기관에서도 무죄 추정의 헌법 정신에 충실하게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 보장에 어긋남이 없도록 수사를 진행하여야 한다. 적어도 미국 연방검찰처럼 수사결과 발표문에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유죄가 가려질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문구라도 넣어야 한다고 본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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