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기술없이 뛰어든 해양플랜트
현재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모두가 힘합쳐 현대重 영광 되살려야

▲ 정구열 유니스트 산학융합캠퍼스단장·기술경영전문 대학원장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해양플랜트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 4년 동안 수주가 한 건도 없어 내린 결정이라 한다. 현대중공업은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으로 시작, 30년이 채 안된 2000년에 우리나라를 세계 1위의 조선강국으로 이끈 주역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빠른 추격과 공급과잉으로 우리나라 조선3사들이 모두 해양플랜트에 눈을 돌렸다. 조선 3사는 그동안 축적된 선박기술력으로 신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해양플랜트는 선박건조와는 달리 고도의 해양기술과 경험을 요하는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이었다. 건조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이었으나 부가가치가 큰 개념설계, 기본설계 엔지니어닝은 초보 단계였고, 핵심기자재 대부분도 수입에 의존했다. 계약도 리스크가 큰 턴키(turn-key) 방식이었다. 수익이 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여기다 유가 하락, 국내 경쟁사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 그리고 고임금 등 다른 이유도 겹쳤다. 어쨌든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사업을 일단 접기로 했다. 다른 조선사들도 별로 나은 상황은 아니다.

최근 조선3사 해양플랜트사업의 위기를 보면서 수년전 서울공대 교수들이 저술한 <축적의 시간>을 다시 생각한다. 선진국의 기술경쟁력은 ‘경험과 지식’으로 축적된 결정체이며, 우리나라도 핵심기술개발을 위한 ‘축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해양플랜트 사업은 충분한 ‘경험과 기술의 축적’없이 너무 서둘렀다고 말한다. 필자도 2년 전 본 지면을 통해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러나 이제 모두 긴 호흡으로 앞을 바라보며 한번 쯤 짚고 넘어가야 할 때다.

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란 말을 많이 한다. 중국을 개혁·개방한 등소평(鄧小平)이 “조용히 힘을 기르고, 때가 되면 나타나라”는 뜻으로 말했다 한다. 2017년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4300억달러고 수입은 1500억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수출의 3분의 1이 하이텍 전자제품이고 미국으로부터 수입은 농산물이 상당부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가 막대하다. 거기다 중국이 2025년 제조업 굴기(堀起)로 세계 제조업의 강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미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무역분쟁이 미·중간의 패권전쟁이 돼버렸다.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당연히 이기는 게임이다. 그래서 중국이 너무 일찍 나섰다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저력이 있는 회사다. 그래서 ‘도광양회’란 말이 와 닿는다. 이번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고임금구조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다면 우선 기술개발로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독일도 노조가 강한 제조업중심의 고임금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기술·고숙련공으로 부가가치가 큰 사업에 집중해 고임금을 지탱한다. 독일은 노동생산성(노동자 1인이 시간당 창출한 부가가치)이 OECD 35개 중 상위권이고 우리는 바닥권이다. 핵심기술없이 해양플랜트산업에 서둘러 진입한 것은 돌이켜 보면 잘못된 의사결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회사는 존속돼야 한다. 고기술·고숙련전략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키워 파이를 크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나눌 것도 많아진다. 우리나라 기술력은 이제 거의 다 중국에 뒤떨어졌다.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도 위험하다. 이제 ‘융합’으로 탈추격해야 한다. 노·사가 협력해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 다툴 시간이 없다. 소속직원 2600명, 그리고 수많은 협력업체의 생계가 달려있다.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울산시민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이 ‘도광양회’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울산의 모두가 응원해야겠다.

정구열 유니스트 산학융합캠퍼스단장·기술경영전문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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