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얘들아, 안녕? 사회샘이야. 이렇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글을 쓰려니 참 멋쩍다. 교탁 앞에서 샘은 늘 너희에게 존댓말을 쓰면서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말을 낮추다니. 오늘은 샘이 너희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살짝 친한 척을 해봤어. 얼마나 꿀잼일까 기대된다고? 글쎄. 모든 중요한 이야기가 다 재미있지는 않아. 그래도 최대한 재미있게 해보려고 노력할 테니까 잘 들어봐.

올해부터 우리 울산은 중학교 무상급식이 전면 시행되기 시작했어. 다들 알고 있지? 여자애들이 책상 모서리에 붙여놓고 형광펜으로 주요 메뉴에 줄그어놓는 급식 가정통신문에는 급식비가 얼마인지 나오지만 스쿨뱅킹 통장으로는 급식비 안 빠져나가는 거. 초등학교는 이미 너희가 6학년일 때부터 무상급식이 됐고, 고등학교도 이번 9월부터 시작됐으니 고등학교 다니는 형제자매가 있는 집에서는 부모님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을 거야.

의무교육인 중학교는 이제 교복비, 수련활동이나 수학여행비만 지원되면 거의 교육비가 ‘0’원이 될 것 같아. 샘이 뉴스에서 본 대로라면 교육감 공약에 따라 내년부터는 신입생 교복비가 25만원 정도 지원되고, 수학여행비도 15만원 이내로 지원이 된대. 앗싸! 내년 수학여행 일정을 미리 계획하면서 ‘요즘 동구 경기가 안 좋으니까 수학여행비로 부모님들 부담 드리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을 계속 했었거든. 정말 다행이다 싶어.

얘들아, 근데 있잖아. 급식이 무료가 되고, 교복비가 무료가 되고, 수학여행비까지 거의 무료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여태까지 학생들 집에서 내던 걸 앞으로는 교육청이랑 지방자치단체가 대신 내준다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야.

얼마 전에 교무실에서 이런 말을 들었어. 요즘 애들은 교과서도 공짜로 주고 밥도 공짜로 주니까 그만큼 아까운 걸 모른다고. 그래서 교과서를 마음대로 찢고, 마구 낙서하고, 밥도 반찬도 다 남긴다고. 무상급식이 아닐 때는 밥값 아까우니까 남기지 말라는 잔소리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못한다고. 그 말을 듣고 샘은 정말 그 모든 일들이 단지 공짜이기 때문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더라.

샘 생각에는 아무도 너희한테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들의 의미를 안 가르쳐줘서 너희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부모의 경제력 혹은 다른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아이들이 최소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만든 제도가 바로 의무교육이야.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을 통해 너희들을 성장시키고, 어른이 된 너희가 번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게 해서 다시 뒷 세대들의 미래를 책임지게 하겠지. 그러니까 지금 너희에게 주어지는 무상은 곧 누군가의 땀과 노력으로 낸 세금이야.

얘들아, 오늘 학교에 오면서는 아무런 경제적인 부담 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게 어떤 뜻일까 떠올려봐. 급식실에 가서는 내 앞에 놓인 밥을 먹는 게 어떤 뜻일까 떠올려보고.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소중하고 또 너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면서 누릴 자격이 있어. 무상은 절대 가치없는 공짜가 아니야. 알겠지? 흠흠. 결국 꿀잼은 아니었던 듯. 그래도 샘이 지금 해준 이야기를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럼 다들 안녕. 학교에서 보자.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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