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울산문화발전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자

 

세상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존재한다. 특히 근대 이후 서구 사회를 기점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문가는 그들의 역할과 권능을 확대해 왔다. 근대 이전은 아마도 종교와 관련한 성직자가 대표적이었을 것이나 점차 그 범위를 확장하고 집단화하여 정치, 법률, 의료, 과학, 철학 등 소위 말하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식을 독점하는 과정에 이르렀다. 급진적인 사회학자로 불린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전문가 사회의 지식 독점과 독단을 경계하였고 사소한 문제 해결마저 전문가에게 의존해버리는 근대 사회는 개인과 대중의 자발적 사고와 판단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매우 위험하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지식의 일반화가 아닌 지식의 민주화에 이르고 있다.

촛불 혁명 이후로 한국의 민도가 급격하게 높아짐에 따라 그동안 정체되어왔던 민주주의의 지난한 과정과 그에 따른 비싼 대가에 관해서도 점차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 제도권 학교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던 우리 국민들의 이런 놀라운 변화는 다분히 자발적이며 집단 지성의 이름으로 길고 긴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서구 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 이정헌 서울뮤직위크 감독 영남대(예술행정학) 강사

가장 최근 우리 사회의 공론화 절차와 과정의 결과는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과 존치에 관한 것 이었다. 숙려 기간이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용어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결과를 기다렸고 만족한 쪽이든 아니든 간에 결국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에 승복하였다. 한국 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있었던 프로세스였고 앞으로도 있을 중요한 국가 혹은 사회 이슈의 논의와 결정에 좋은 선례를 남겼다.

새로운 시정부가 출범하였고 역시 많은 시민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 그 무언가의 종류나 범위는 실로 광범위하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울산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공론화 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려 한다. 물론 모든 사안에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기에 먼저 이 공론화 위원회에 올릴 의제를 시의회와 협의를 거쳐 정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공정한 결정과 부드러운 집행 과정을 위해서는 이 분야가 좋아서 죽어라고 파들어 간 소위 ‘덕후’들과 ‘깨어있는 시민 집단’이 공존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방적인 의견과 정보를 전하는 기존의 미디어나 매체보다 시민들의 집단 지성과 관심이 표출되는 SNS와 커뮤니티, 팟 캐스트 등을 보면 “어떤 전문가도 덕후를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의 조언과 필터링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시민사회와의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

끝으로 필자의 경험을 밝히자면 국가기관이나 지자체의 위원회 등에 전문가 자격으로 회의나 컨설팅을 가면 매번 느끼는 자괴감이나 공허함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정책을 요청하면서도 막상 결론은 거의 매번 현실과 예산 문제를 핑계로 이도저도 아닌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공공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리에 포함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사안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도 한 몫을 한다.

이제부터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을 믿어보자.

이정헌 서울뮤직위크 감독 영남대(예술행정학) 강사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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