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들어 다시 물꼬 튼 남북관계
문화유적·생태조사 공동으로 추진
남북교류 감동, 문화로 이어갔으면

▲ 홍영진 문화부장

10월부터 당장 남과 북이 개성 만월대(滿月臺)를 공동조사 하기로 했다.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만월대는 400여년간 고려 왕이 정무를 보던 궁터로서 고려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지다. 지형을 살려 많은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신라의 서라벌, 조선의 한양과 달리 고려의 주요 유적지가 주로 북한땅에 있다보니 그 시대의 생활사를 비롯해 지역사에 이르기까지 다른 시대사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만월대 조사는 우리 역사의 빈 공간을 촘촘하게 채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학계는 물론 역사에 관심 많은 일반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정재숙 신임 문화재청장이 한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화재에는 휴전선이 없다.”

만월대처럼 휴전선이 없으나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문화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한반도의 암각화 유적이 아닐까 한다. 선봉에 선 울산의 암각화 연구활동이 최근의 남북교류 활성화 바람을 타고 반쪽에서 벗어나 완전체의 한국형 암각화, 혹은 한반도 암각화를 조명하는데 앞장 서야 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남북간의 공동연구는 어쩌면 10여년 이상 제자리걸음만 해 온 대곡천 암각화군의 세계유산등재에도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유네스코세계유산 추세는 예전처럼 어느 한 도시, 하나의 유적지에 국한 해 등재하는 방식을 벗어나고 있다. 특정 지역만의 유적지에 세계유산 타이틀을 주기 보다는 그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 하나의 공통된 가치나 형태를 보여주는 문화재에 더 높은 평점이 매겨지고 있다.

지난 7월 세계유산이 된 ‘한국의 산사’도 전국 곳곳 7개의 산사를 하나로 묶어 추진했고, 우선 등재작업 목록에 올라있는 ‘가야 고분군’ 역시 무려 10여개의 영호남 지자체가 맞손을 잡고 움직인다. 천전리 암각화와 비슷한 문양의 함경북도 무산군 지초리 바위벽화를 포함해 북한의 신석기 바위그림까지 하나로 아울러 한반도의 암각화를 종합적으로 집대성한다면 남북한이 공동등재하는 최초의 세계유산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처럼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처음부터 휴전선이 없었던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암각화처럼 울산과 관련 있는 역사문화나 연구활동 중에는 남과 북의 바다를 오갔던 고래도 있다. 울산 앞바다가 포함된 귀신고래회유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의 귀신고래는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같이 출몰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해안의 귀신고래는 한반도 울산 앞바다 어귀까지 내려와 겨울을 보내고 번식을 한 뒤 여름이 돌아오면 오츠크해 북단까지 먹이를 찾으러 먼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 동안의 귀신고래 연구는 남북 간의 긴 단절로 인해 주로 남한 수역 안에서만 생태연구가 진행돼 왔다.

물론 러시아와 일본과의 공동연구가 진행되긴 했으나 관련 학계에서도 북한 수역까지 아우르는 한반도 연안 전역의 조사연구에 늘 목말라 있었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김현우 연구사는 “연구의 폭을 북한까지 넓힐 수 있다면 그 동안 러시아·일본과 진행해 온 고래, 물범 등의 해양생물 연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래의 이동경로나 개체수가 더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 교류의 물꼬를 트는 건 정치의 일이다. 하지만 진한 감동과 지속가능동력을 만드는 건 역사와 문화의 힘이라는 걸 잊지 말자.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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