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선 울산양정초등학교 교사

이스라엘을 일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척박한 사막과 바위로 이루어진 산악지대가 90%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브엘세바 남쪽은 ‘네겝’이라고 부르는데 ‘황량한 광야’라는 뜻이다. 그 척박한 땅에서 희망을 본 사람이 있었다. ‘황토라면 물만 공급하면 되겠구나, 그곳을 세계 최고의 농경지로 바꾸자’ 그의 무모한 도전은 지금 그 땅을 유럽인들이 최고의 값을 지불하고 사가는 과일과 채소를 생산하는 땅으로 바꾸어놓았다. 러시아에서 맨손으로 고국으로 돌아와 건국의 기초를 놓고 ‘네겝’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시킨 그는 이스라엘 초대수상 벤구리온이다. 13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식날 오후, 트럭에 삽과 괭이를 싣고 운전석에 오르는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수상임기 마치는날 트럭을 몰고 어디로 가십니까?”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의아하게 여긴 기자가 다시 물었다. “왜 사막으로 들어가십니까?”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사막경영에 있소이다.”

필자는 지금 아이들의 꿈과 상상이 펼쳐지는 꿈마루 동산, 물이 거울처럼 보이게 만든 연못같은 미러폰드, 101인의 책상이 형상화된 야외문화 공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울산도서관 3층, 남쪽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다. 조도(照度)조절이 가능한 개인 스탠드와 무선충전기가 설치된 책상, 인체공학적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껏 원고를 쓴다. 그러다 안경을 벗고 눈을 들면 철 따라 모습을 바꾸는 얕은 앞산의 녹음이 평안함을 주는 곳, 이곳은 울산도서관이다. 지난여름, 110년 만의 폭염에 눈 부은 아침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도 ‘도서관에 간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키 큰 갈대군락 사이로 황갈색 부들이 물 위로 뜨고, 청둥오리가 예닐곱 새끼들을 이끌고 헤엄치는 여천천을 따라 5분을 걸으면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모양을 형상화하여 만든 울산도서관을 만난다. 연면적 1만5176㎡, 총 651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4월26일 개관한 울산도서관은 전국 지역 도서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자료실, 대강당, 전시장, 종합영상실, 세미나실 등 문화공간과 북카페, 식당 등 편의시설, 3층의 종합열람실은 내가 본 도서관 가운데 으뜸중 으뜸이다. 천정조명 하나, 서가 배치, 스터디 룸, 파라솔이 있는 야외테라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하나 사람 친화적이지 않은 곳이 없는 이곳을 날마다 드나들면서 필자는 사람이 설계해내는 일이 어디까지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며 감탄한다. 그런 점에서 울산도서관은, 다시 말하지만 최고 중의 최고다. 아직 아래층 인문학 강좌와 대강당 클래식을 들어본 적도 없고, 2층 북카페에서 빵을 겸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적도 없지만 도서관 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고 행복해진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남부 네겝을 지상 최고의 농업지역으로 만든 벤구리온을 생각한다. 도서관이 들어선 자리는 1977년 11월부터 울산의 모든 분뇨를 처리했던 여천위생처리장이 있던 곳이다. 매일 같이 들어오는 오물로 인해 주민들이 수십년간 고통을 받아왔던 곳, 옆 도로를 지날 때 모든 사람들이 창문을 꽉 닫아 올리며 외면했던 이곳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생긴 것이다. 이곳을 부지로 선정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냄새나고 모기떼가 들끓어 언제나 민원대상이던 황무지에서 울산의 미래를 보고 그곳을 장미꽃이 피는 곳, 시민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킬 공간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개척자’의 마음을 가졌던 초기 도서관 설립 운영위원들의 혜안(慧眼)에 경의를 표한다. 이후 10여년 세월동안 도서관 건립을 위해 설계, 건축, 운영, 개관에 이르기까지 땀 흘리고 수고하신 모든 분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필자는 오늘도 백화점 공중관람차의 야경이 아름다운 삼산의 밤풍경을 뒤로하고, 늦은 8시55분. “오늘도 저희 울산도서관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AI 로봇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치열하게 독서를 하고, 책을 쓴다. 그러면서 늘 이런 인사를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난다. ‘아니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러면서 가방을 메고 아침에 지나온 도서관 다리를 다시 건넌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또는 ‘그 어떤 것의’ 벤구리온이 되기를 꿈꾸면서.

김순선 울산양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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