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별렀던 지리산 종주 감행하며
삶에 대해 자문하는 성찰의 시간 보내
인생, 가벼운 맘으로 즐겁게 사는게 답

▲ 곽해용 국회비상계획관(이사관)

최근 태풍 ‘솔릭’이 상륙하기 전에 버킷리스트 하나를 드디어 실행하게 되었다. 바로 지리산 종주였다. 언젠가 꼭 해보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미처 하지 못했다. 마침 동행이 있어서 금요일 야간열차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새벽 4시부터 성삼재에서 노고단(1507m), 반야봉(1732m)을 거쳐 세석대피소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장터목을 거쳐 마침내 천왕봉(1915m)에 올랐다.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선명한 최상의 날씨였다. 법계사­중산리 하산 코스를 끝으로 대장정을 마치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짧은 일정의 천왕봉 여정은 20대 젊은 날에 성철 큰 스님을 뵙기 위해 밤새워 3000배를 했을 때만큼이나 힘들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돌길, 바위길 계단과 내리막과 오르막길, 안전한 길과 험한 길들이 인내의 한계를 시험했다. 어리석은 자도 여기에 오면 지혜롭게 된다는 지리산(智異山). 약 40여 시간 산속에서 머물면서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언제쯤이면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등등. 아둔한 나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현답을 찾게 된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명산이었다.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고 했다. 힘은 들었지만 산속을 헤매는 내내 벅차게 기뻤고 행복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해돋이의 광경은 신비한 구름 떼와 어우러져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반야봉 부근의 고즈넉한 저녁노을, 촛대봉에서의 아침 지리산은 구름바다에 떠있는 섬들. 천지조화, 그 자체였다. 천왕봉의 하늘, 구름, 바위 그리고 풍파를 이겨낸 고사목은 서로 강렬한 원색들로 어우러져 의외의 아름다움을 뿜어내었다.

소설 <대망>에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짊어진 배낭은 희한하게도 갈수록 더 무거웠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극복해나가는 자체가 또 하나의 행복이리라. 천왕봉 정상은 공간이 협소해 오래 머물기가 제한된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정상도 그렇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과정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이다. 정상 직전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내려오던 등산객이 툭 던진 인사말이 힘을 준다. “이젠 하산하는 즐거움만 남았네요.” 생각해보니 그러하였다. 인생길도 하산하는 마음처럼 가볍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울까. 굳이 많은 돈도 권력도 성공도 필요치 않으리라. 소소한 행복과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을.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다. 물론 적당한 건강과 가족사랑, 친구, 일거리 등이 있다면 그 행복은 더욱 커지겠지만. 아들과 딸의 배낭까지 메고 가는 아버지도 저기 보인다. 저것이 아버지의 무게이겠지. 혼자 온 어떤 이는 “홀로 종주를 하니까 오히려 더 힘들다”라고 말한다. 인생길에 동반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순수 자연을 상실한 도시를 벗어난 이번 산행은 오롯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벽하늘의 수많은 별들. 하늘에 별이 있다는 사실도 잠시 망각하고 지냈나 보다. 자연을 다시 보았다. 돌멩이 하나, 나무 한그루에도 오랜 풍파를 이겨낸 우리 민족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등산객들도 모두 지리산을 닮아 있었다. 지리산 종주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여유를 가지고 여기저기 숨어있는 야생화도 천천히 음미해보련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이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에디 캔터의 말도 가슴에 새롭게 깊이 와 닿았다.

곽해용 국회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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