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선임기자

추석하면 벌초와 추어탕이 떠오른다. 무더위 속의 벌초는 산골짝을 누비는 전쟁이다. 오죽하면 벌초를 ‘풀(草)을 창으로 무찌르는(伐) 정벌’이라고 했을까. 이 와중의 이열치열 뜨거운 추어탕 한그릇은 보약이다.

관도대전(官渡大戰) 때 조조는 군량이 떨어지자 군대를 철수시키려 했다. 이 와중에 배고픈 병사들은 진흙 속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음식을 해먹었다. 조조는 아무거나 먹으면 즉시 처형하겠다고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미꾸라지가 너무나 맛있었다. 퇴각 직전 미꾸라지를 먹고 돌아온 군사들은 일당백의 괴력을 휘둘렀다. 조조는 이 음식의 이름을 ‘관도니추(官渡泥鰍)’라고 불렀다. 정사 <삼국지>나 <삼국지연의>에는 나오지 않지만 민간에 전해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보통 ‘추어’를 가을과 연관시켜 秋魚(추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鰍(추)’를 쓴다. 조조가 이름지은 관도니추(官渡泥鰍)의 ‘니추’는 진흙(泥)에 사는 미꾸라지(鰍)를 말한다.

사람이 미꾸라지를 매우 좋아하는만큼 미꾸라지도 모기 유충(장구벌레)을 1000마리 이상 먹는 모기유충 마니아다.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오대·오천부락은 화학단지에서 흘러나오는 온배수로 ‘모기지옥’으로 변했던 적이 있다. 보건소는 1998년 미꾸라지 6만마리를 저습지에 방사했으나 외황강 하구의 백로와 왜가리들이 공습해 미꾸라지의 씨를 말려 버렸다. 조조 군사는 미꾸라지로 승리했으나 울산시는 미꾸라지 대전(大戰)에서 참패했다.

▲ 추어탕.

근래에는 ‘법꾸라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법률을 이용해 처벌을 능수능란하게 피해가는 사람을 말한다. 미꾸라지를 거머쥐면 아무리 꽉 잡아도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는데, 피부샘에서 점액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뮤신’이 바로 그 것. 피부와 혈관, 관절 등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꾸라지가 금값이 된 적도 있다.

희망, 희망 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미꾸라지 숙회라는 음식을 잡숴보셨는지요/…/기름 둘러 달군 백철솥 속에/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을 집어넣고/ 솥뚜껑을 들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그래 놓으면/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익어 나오죠… ‘미꾸라지 숙회’ 김언희

미꾸라지는 징그럽고, 미끈거리고, 고약한 소리도 나고, 더러운 거품도 일고…. 그런데 그렇게 비위 상한다면서 고상 떠는 저들이 제일 먼저 먹는 것이 추어탕(鰍魚湯)이며 미꾸라지 숙회다. 몸을 비틀어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비상한 재주는 아마도 미꾸라지보다 저들이 한 수 위인 것같다. 이재명 선임기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