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꽁꽁 얼어붙은 울산 인력시장 현장 가보니

▲ 17일 이른 새벽 울산시 중구 학성동의 한 인력사무실이 일자리를 찾는 일용 근로자들로 가득차있다. 김경우기자

직업소개소 문열기 전부터
구직자 몰려들어 북적북적
일감없어 소개소도 힘들어
지역 체임 전년比 23% ↑
일용직 근로자 한숨 보태

“추석대목이요? 어디 일할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너무 막막하죠.”

민족대명절 추석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울산의 체감경기는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특히 인력시장은 그야말로 차갑게 얼어붙었고, 추석 보너스는 커녕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크게 늘어 명절을 거꾸로 쇠야 하는 구직자들의 한숨소리만 깊어지고 있다.

◇인력시장 일감없어 절반은 빈손

17일 새벽 4시. 인기척조차 없는 울산 중구 학성공원 인근 직업소개소 앞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직업소개소 입구에는 5시30~50분부터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구직자들은 오늘은 꼭 일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라도 빨리 작은 사무실에 자리를 잡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만난 김모(56)씨는 “이틀째 일감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일감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제일 먼저 사무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A 직업소개소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하루에 많으면 120명 정도 구직자들이 일을 구했고 평균적으로는 80명 이상을 연결시켜줬다. 그러나 올해는 일감이 반으로 뚝 떨어져 요즘은 60~70명을 연결해주는데 그치고 있다. 조선업 등 제조업의 장기화된 경기불황으로 전체적으로 일감이 줄어들었고, 건설업 등 관련업계도 직격탄을 맞아 일자리 따기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가 된 셈이다.

일감이 줄어들자 구직자를 알선하는 직업소개소 형편도 어려워졌다. A 직업소개소는 매년 경기가 어렵다고는 해도 꼬박꼬박 사무실을 찾는 구직자들에 추석선물을 나눠줬지만, 올해는 이것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소규모 소개소 일감부족 더 심각

또다른 직업소개소를 찾았더니 규모가 작은 곳은 사정이 더 심각했다. A 직업소개소에 이어 방문한 B 직업소개소에는 이날 총 60명이 찾아왔지만, 일감을 구한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 50명은 빈 손으로 돌아갔다.

B 직업소개소 관계자는 “나도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 올해 2월 일자리를 잃었고, 여기 중간관리자로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지만 이런 상황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지난해보다 일감이 더 줄어들었다. 하루에 30명씩은 연결시켜야 사무실도 운영이 되는데 오늘처럼 일감이 없으면 특히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동구에 위치한 대형 조선소가 위기를 맞으며 동구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근로자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취재진이 이날 3곳의 직업소개소를 살펴봤지만 다수의 푸른빛 현대중공업 점퍼를 입은 근로자들이 눈에 띄었다.

◇체불임금도 지난해 비해 급증

경기불황으로 일감은 계속해서 줄어들지만, 실직자가 증가한 만큼 일할 사람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도 많이 유입돼 일용직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일감 부족현상은 극대화되고 있다.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제때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울산지역의 체불임금은 총 32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63억원보다 60억원(22.8%) 증가한 수치다.

임금체불이 발생한 업체 수는 울산 내 2200여곳에 이르고,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도 6000여명이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출신 정모(66)씨는 “다들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임금이라도 제때 받았으면 좋겠지만, 업체의 갑질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오전 7시께가 되자 끝내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지 못한 30여명의 구직자들은 “오늘은 구하지 못했지만 내일은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안은 채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이들의 축 처진 어깨가 역대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현재의 울산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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