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한 노인대국 일본
첨단기술 활용한 케어시스템 도입
한국도 포괄적인 고령화 준비해야

▲ 강혜경 경성대학교 교수역임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인복지관 교실에서 고향의 봄이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 주름너머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린 시절로 시간 속 여행을 떠난다. 한 두 분씩 어릴 적 이야기, 그때의 꿈과 어려웠던 시절,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살아온 질곡의 인생을 들려주신다. 그리고 나이듦에 알게 된 것들, 평온한 일상과 한가한 시간, 노년기 삶에 대해 말씀하신다.

노년기에 접어든 그들에게 가장 좋은 건,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거란다. 팔십 평생 자녀 양육과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 또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하신다. 늦게 일어나도 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 시간이란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제야 인생이 뭔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손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지혜는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란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로 노인복지관을 오는 오늘이 축복이라 하신다.

영화 ‘어웨이 위 고(2010, 미국)’는 출산을 앞두고 인생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으로 정착할 곳을 찾아 떠나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 고향 부모님 댁에서 근처로 이사하고, 양육에 도움을 받으며 정착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하는 장면이 있다. 부모님은 2년간 해외에서 살아보기로 했다는 계획을 전한다.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한 노년기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인생의 계획이고 실현할 수 있는 그때를 말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0명의 외손자를 키워주신 친정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삶에도 매 순간, 그때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인대국 일본은 7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로, 2025년은 ‘단카이 세대’(2차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붐세대)가 75세에 진입한다. 최근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자택에서 간병과 의료, 생활지원과 24시간 방문서비스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선언했다. 정부 재정부담의 해소와 간병의 효율화를 위해서 IoT 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을 도입해 시설과 간병인력 부족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지역 내 상업공간(스타박스, 편의점 등)을 활용한 치매카페를 운영하며, 치매와 치매 가족들에게 간병상담과 지역정보를 제공한다. 공공기관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택배회사가 물건 배달과 함께 노인건강을 체크하고 경비업체가 가사대행 서비스(전등 갈기와 식사 등)를, 여행사가 전문도우미와 함께 장애우를 위한 온천여행을 수행한다. 그리고 콜렉티브 하우스를 통해 육아와 간병을 돕는 주민생활 공동체를 시행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한국도 이제 어떻게 고령화 사회를 준비해야 할지, 의료, 간병, 연금 등 각 분야의 틀을 넘어 총괄적인 사회보장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3월 사회서비스 제공의 중점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개편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를 발표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고령화 사회. 노년기가 누구나에게 기다려지는 미래가 가능할까? 고령화 사회에서 오래 살고 싶은 욕망보다 국가나 지자체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무엇으로 살아보고 싶은 노년기를 어떻게 맞을 건지 준비하고 계획함이 필요해졌다.

오랫동안 노년을 떠올리면 오지를 여행 다니며 사진 찍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20대의 손자손녀들에게 친구같은 할머니가 되어주는 것으로 바꼈다. 된장국에 따뜻한 밥상을 마주하고 그 녀석들의 연애사와 잡다한 수다로 깔깔대고 싶다. 사실 여행·사진이나 글보다 할머니가 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80세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할머니가 되어야 하고, 자녀들이 시집을 가고 손자손녀들을 낳아 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 살 것인지? 살아보고 싶은 삶을 계속 상상하며, 기다려지는 노년기 그때를 준비하며 살아야겠다.

강혜경 경성대학교 교수역임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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