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교수·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추석을 없애 달라.’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00여건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명절이 부부갈등 유발, 이혼율 상승을 초래하고 어른들의 잔소리와 같은 덕담이 젊은이들에게는 명절 스트레스가 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지출로 생활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농사를 주로 지었던 우리 조상들이 1년 동안 수고한 결실을 거두는 시기에 맞는 추석(秋夕)은 남녀노소, 빈부(貧富)와 반상(班常)의 차이 없이 모두 어울려 즐겼던 날로 백성들에게는 모처럼 푸짐하게 먹고 가무(歌舞)를 즐길 수 있었던 축제였기 때문에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전해져 오게 되었다. 원래 추석은 차례를 지내는 명절이 아니었고 밥과 술을 준비하는 것은 축제에서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 위함이었으나 축제가 거듭되면서 점차 제사가 행해졌다. 추석에는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넉넉히 만들었는데 그해의 첫 곡식인 햅쌀로 밥을 짓고 무병장생을 기원하는 소나무 잎을 솥의 바닥에 깔아 송편을 찌고 풍성한 오곡백과와 여러 음식을 준비하였다. 길쌈(베짜기)대회를 열어 궁녀들이 실력을 뽐낼 수 있도록 하였고, 강강술래로 아녀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마음을 모으도록 하였다. 널뛰기로 처녀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하였고 다음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차전놀이 등으로 추석은 풍족한 먹거리와 함께 놀거리가 넘치는 나라의 큰 축제였다.

추석 차례의 목적은 흩어진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모여 그 해 수확한 곡식이나 재료들로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나눠 먹고 정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우리는 차례를 지내고 푸짐한 음식으로 친지들과 나눠 먹으며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통체증으로 길이 막히고 열 시간이 넘게 걸려서라도 보고 싶은 친지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도로에서 쉬고 달리기를 반복하여 그리운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요즘 명절 연휴가 되면 공항은 해외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향과 가족, 친지를 찾아가는 이들이 아직은 더 많다.

공휴일이 겹쳐지면 대체연휴까지 적용되는 우리나라의 명절이 나를 위해 투자하는 단순한 일상탈출을 위한 여행의 시간이 아니라 점점 희미해져가는 가족관계와 친지라는 끈끈함을 이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반면 어른들과 친지들의 취업과 결혼 재촉, 출산문제에 관한 훈계는 당사자에게는 더 힘든 명절이 되기 마련이다. 어른들은 충고나 조언보다는 칭찬과 응원으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도록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명절은 올 해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가야 할 ‘가족애’ ‘응원’ 그리고 ‘무한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임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피하고 싶은 명절, 누군가가 희생하는 명절이 아니라 가족 간의 진심어린 배려와 따뜻한 정을 나눔으로써 그리운 만남을 기다리게 하고 함께 즐기는 감사의 명절로 만들어가야 한다. 옛날의 축제 분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가족이 함께 모여 맛난 음식을 먹고 즐기며 풍성함을 나눌 수 있는 우리의 따뜻하고 고마운 명절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교수·울산북구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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