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상일보 = 연합뉴스 ]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초법적 처형'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두테르테 대통령이 초법적 처형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후폭풍을 맞고 있다.

    29일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7일 연설에서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내가 1페소라도 훔친 적이 있느냐?"라는 물음을 던진 뒤 "내가 저지른 유일한 죄는 초법적 처형(extra judicial killings)"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자신이 부패에 연루되지 않고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을 펴려다가 ICC의 예비조사 대상에 오른 초법적 처형을 시인하고 만 셈이다.

    인권단체와 비판론자들은 곧바로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번 발언은 (초법적 처형의 책임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이로써 ICC는 그의 다중(多衆) 살인에 대한 검토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논평했다.

    필리핀 야당 소속 상원의원인 리사 온티베로스는 "고기는 입 때문에 잡히고 악독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잡히는 법"이라며 "그의 혐의 인정으로 초법적 처형에 대해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에 책임을 물으려는 국가 및 국제사회 차원의 노력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 측은 발언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통령 법률 자문인 살바도르 파넬로는 "대통령의 발언은 마약범 살인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었다"며 "그는 과거에도 사법당국에 의한 법외 살인을 지속해서 부인해왔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6월 취임한 후 강력한 마약 단속에 나섰다.

    이후 4천854명의 마약 용의자가 경찰에 의해 사살됐고 약 120만 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마약 단속 과정에서 사살된 인원인 1만2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경단에 의해 사살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런 초법적 처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ICC는 지난 2월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후 ICC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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