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채움과 비움, 그 오묘한 조화

▲ 세계 여러 도시의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과 (오른쪽 아래 사진) ‘인간을 위한 건축’으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건축은 도시의 얼굴이다. 우리의 삶터인 울산을 ‘집’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건축적 상상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다. 대한건축사협회 울산광역시건축사회가 개최하는 2018 울산건축문화제(11월1~5일·울산문예회관)를 앞두고 울산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에게 그들이 경험한 다양한 건축 이야기를 들어본다.

건축, 자본주의 경제논리 속 변화 거듭
상품화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은 사라져
여유 가질때 행복해지는 인간의 삶처럼
‘채움’ 아닌 ‘비움’으로 공간 재단해야
최근 발코니 만드는 추세도 같은 맥락
시건축사회 ‘2018년 울산건축문화제’
내달 1~5일 울산문화예술회관서 개최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그 나라, 혹은 그 도시의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물과 같다. 유럽에서 그 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을 가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성당처럼 웅장하고 위대한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소시민이 살고있는 건축물에서도 그들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있는 역사와 문화가 느껴진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과 그 옆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신도시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유럽 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면 우리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과 문화를 담는 큰 그릇

우리나라 도시들은 옛 것과 단절되어있다.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과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울산에도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예술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 신라의 영축사 등 절터, 조선시대 번창했던 향교와 옛 행정기관인 동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느낄 수 있는 학성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단편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 대부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60~70년대 인구와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울산 또한 따라잡기 버거운 속도로 확장됐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 도심과 신정동, 남외동 등 오래 된 주택단지에서는 울산의 성장 과정을, 대단지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서는 그 이후인 1990년~2000년대의 시대상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것이 없어지고 바뀌었다. 박물관이나 민속촌에서 보던 초가집과 기와집이 없다고 전통과 문화가 단절되는 건 아니다. 아쉽지만 현재의 모습 속에서도 잘만 찾으면, 그리고 떨어진 연결고리를 하나로 잇는다면 한동안 우리 눈에 띄지않던 그 무엇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시 다가와 있을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도시들은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확장되고 변화되어 왔다. 개발의 시대에서 건축물은 더 크고, 더 높고, 더 많고, 더 비싼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기계적인 가치관을 형성했다. 우리의 삶터인 도시, 그리고 집이 상품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인생 또한 상품의 잣대에 놓은 반인문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관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다.

많은 건축주들은 자신이 짓는 건물의 건폐율과 용적률이 법정 비율의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꽉 채워지기를 바란다. 이웃과의 조화 보다는 내 집이 옆집보다 무조건 높고 멋있어야한다고 고집한다. 그러면서도 비용문제에 있어서는 ‘무조건 싸게!’만을 외친다. “이 집은 멋있는 건가요?” “이렇게 하면 좋은 건가요?” 이러한 질문 속에는 요즘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국가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이 없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교환가치로 측정되는 그런 시대. 삶과 가장 밀접한 의식주 또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로 평가되는 서글픈 시대다.

‘뗀석기’ ‘간석기’를 사용하던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집을 지었다. 비와 눈을 피하고,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마음 편하게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의 건축은 그런 의미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되팔 때 잘 팔려야 하고, 임대가 잘돼야 하며, 수익창출이 용이해야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할 집이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평가되는 것이다. 집은 행복한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자산의 가치로 집을 바라보는 시선을 잠시 거두자. 내 삶을 담는 작은 용기, 도시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우리집 울산을 새롭게 바라볼 때다.

◇덜어낸만큼 여유로운 삶의 공간

2010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세상은 또 한번 변화를 겪었다. 문자와 통화만 되던 휴대폰이 휴대가능한 컴퓨터로 진화했다. 혁신이라 할 만하다. 지도, 은행업무, 문서작성, 카메라, 독서, 동영상, 인터넷, 영화, 각종 예약 등 잘 알지 못하는 기능의 집약체로 편리한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스마트폰 폐해가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편리함은 좋지만 업무시간의 연장, 사생활의 부족, 스마트폰 중독 등의 부작용이다. 스마트폰 없는 생활은 이제 생각할 수도 없지만 알지 못하는 기능, 별 필요 없는 기능까지 그 작은 기계를 빈틈없이 채우면서 스마트폰 가격은 단순전화로 보기힘든만큼 뛰어올랐다.

건축에서도 기능과 공간을 채우려는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거실도 커야 하고, 방도 많아야 하며, 주방과 화장실도 크거나 고급스러워야 한다. 누구나 원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그 모든 것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건축을 함은 큰 비용이 발생하고, 일생에서 몇 번 오지 않는 기회이니 욕심을 낼 만 하다.

▲ 채수석 건축사사무소 석아 대표

하지만 인간 삶은 적정한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건축 또한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서 공간을 재단할 때 오히려 더 안락하고 편안할 수 있다. 예전의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닭장과 비슷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리 내부 공간이 좁은 원룸이라 할 지라도 발코니를 만드는 추세다.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건축 공간은 비움으로서 가치가 더 높아진다.

도덕경에 ‘서른개의 바큇 살이 통에 연결되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어도 비어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너무 채우려 하는 건 아닌 지, 우리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채수석 건축사사무소 석아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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