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뜨거운 계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고, 여기저기 꽃소식이 가득한 가을이다. 얼마 전 보고 온 대왕암 꽃무릇도, 문화예술회관을 오가는 도로 한가운데 핀 가을장미도 너무 근사하기만 하다. 게다가 울산대공원에서는 핑크뮬리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행복한 느낌이다.

물론 아름다운 것이야 존재 그자체로도 사람에게 행복을 주겠지만 그러한 풍경이 갖는 의미는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있는 것이 행복할 것이고, 다른 이는 이 풍경을 함께 보고픈 이를 떠올리면서 행복할 것이며, 또 다른 이는 보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런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낸 누군가의 노력을 생각하며 감사할 것이다. 그러한즉슨 결국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행복조건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엊그제 발간된 통계개발원의 계간지에서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유무, 즉 사회적 관계망이 두터울수록 행복수준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 보고서에서는 UN이 작성한 ‘2018 세계행복보고서’의 자료를 빌려, 경제적 생활수준에 비해 한국인의 행복수준이 낮은 편임을 지적하고 있다. UN의 행복보고서에서는 삶에 대한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1인당 GDP, 사회적 관계, 출생 시 건강기대수명, 자율성(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의 자유에 대한 만족여부), 기부, 부패인식(정부와 기업에서 부패에 대한 인식)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건강기대수명이나 1인당 GDP지수에서는 한국이 상위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경제수준이 낮거나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회통합이 약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투명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모든 불행의 원인이 침체된 경제 상황 탓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행복한 삶에 있어서 소득이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러나 그 역시도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이지 않은가. 나 하나의 노력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를 바로 살릴 수는 없지만 서로를 위한 작은 노력이 우리의 행복을 끌어낼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물론 때로는 세상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래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 따위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빚지고 있다. 적어도 공원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반가워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빚진 셈이다.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일까, 나는 내 주변 사람의 선택과 자율을 얼마나 존중하는 사람일까, 내 행동이 내가 속한 사회를 흐리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에게 빚진 행복을 갚기 위해, 지금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것들이다.

배미란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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