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연희 정의당 울산시당 여성위원장

많은 학자와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자유로이 논쟁한다는 뜻의 백가쟁명,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아버지의 큰 기침소리에 입을 다물어야 했고,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통치에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는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빠르게 진보하고 있지만 제도는 늘 뒤따라오기가 바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치다. 그 가운데에서도 국회가 그렇다. 다양한 국민의 소리가 모여드는 ‘민의의 전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대 양당의 일방통행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서로 싸움질만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신뢰는 바닥이다. 좀 지난 조사결과이긴 하지만 2015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회 신뢰도는 17.4%로 조사대상기관 중 꼴찌를 기록했고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한 2011년의 직업별 신뢰도에서 10점 만점에 2점을 받았다. 길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4점인 것과 비교하면 불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불신을 받는 국회가 국민의 생활 전반을 결정하는 막중한 권한을 갖고 있어 신뢰를 높일 제도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현재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법을 만들고 고치는 권한을 국회의원 자신들이 갖고 있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방법이 없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없애기 위해 학계나 사회단체 등 많은 곳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지만 늘 시늉만 할뿐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다보니 꼴도 보기 싫어진 국회의원 숫자를 현재보다 확 줄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국회의원의 세비는 약 1억4000만원 정도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와 거의 같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은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의 두 배쯤 된다. 이쯤 되면 월급은 많이 받고 특권만 누리니 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말에 수긍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하기엔 국회의원 한 사람의 할 일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 정부 1년 예산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400조원이 넘어섰다. 국회의원 1인당 기계적으로 계산해도 1조3000억원 이상을 감시해야 한다. 국회를 찾아오는 온갖 민원 대응으로 빠끔한 시간이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제대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지 국정 전반을 견제하는 중차대한 책무는 또 어찌할 것인가.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의원을 늘려 그들의 고액 연봉 등 각종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그냥 늘려서는 안 되고 그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 각계각층의 국민 대표들이 국회로 들어와서 원구성이 보다 다양해지면 그때부터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자정이 시작된다. 정당과 의원은 살아남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동안 거대 양당 구조의 의회 기득권에 막혀 제도권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군소정당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책 경쟁을 통해 전체 기득권을 없애려고 노력한 과정을 살펴보면 확신할 수 있다.

얼마 전 온 국민의 공분을 산 ‘국회특수활동비’ 폐지를 주장하고 관철시킨 곳이 군소정당에 불과한 진보정당이 이뤄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둑이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송곳구멍 같은 틈새로 인해 전체가 터지게 되는 것과 같이 기득권을 가진 거대 양당이 서로 야합 할 수 없도록 더 많은 정당과 의원으로 국회가 구성되도록 해서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현실화 하려면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치 외면이나 불신은 현행 승자독식구조의 선거제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말을 경청하고 실천할 후보를 선택해도 그 후보가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하지 않으면 무조건 사표가 되어 버리는 현행 선거제도가 정치 불신을 가져온 것이다. 선거제도의 개선은 그동안 여러 가지 안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자! 그럼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아야 할까.

강연희 정의당 울산시당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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