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회 국전 대통령상 수상자 김창락 작가의 ‘울주 반구대 암각도’. 무려 40년 전인 1978년에 그려졌다.

한국학중앙硏 소장 사실 확인
민족기록화 일환 국가주도 제작
제의 의식하는 선사인 모습등
사실적인 묘사 뛰어난 대작
작가 스토리텔링·상상력 눈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그린 40년 전 그림이 나왔다. 한국적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 고 김창락(1924~1989) 작가의 ‘울주 반구대 암각도’(1978)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최초보고 이후 7년 만에 암각화 주변의 사실적 묘사에다 작가적 상상력이 총동원 된 대작이, 무엇보다 당시 국가주도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암각화 도시 울산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300호 ‘울주 반구대 암각도’는 가로 약 3m, 세로 약 2m 크기다. 화면 속에는 대곡천이 흐르고 건너에는 거대한 수직암벽도 보인다. 지붕 같은 돌출 바위와 그 아래 너럭바위, 옛 한실마을 방향의 암벽도 묘사됐다. 실제와 똑같은 그림 속 풍경은 작가가 실제로 현장을 꼼꼼하게 답사한 뒤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적 묘사에 더해 작가적 스토리텔링과 상상력이 가미된 작업이 눈에 띈다. 60여명 선사인들이 각자 다양한 역할과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은 배로 절벽에 다가가 사다리를 놓고 바위그림을 새기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제물인 멧돼지를 얹은 바위단장 앞에서 여성 사제가 제의 의식을 주재하고 있다. 부족민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소원을 빌면서 제의와 그 너머 바위그림 제작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울주 반구대 암각도’는 당시 국가주도로 진행된 ‘민족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것이다.

민족기록화 사업은 군사정부 시절인 1967~1979년 JP(김종필) 주도로 문화공보부가 당대 최고의 동서양 화가들을 위촉해 ‘우리민족의 국난극복과 경제발전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영구히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이 그림을 그린 김창락 작가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사양’(斜陽)으로 국전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그 같은 명성으로 이 사업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상작은 지난 2015년 울산문예회관 개관 20주년 기념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민족기록화는 전승, 경제, 구국위업, 문화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제작됐다. 작품소재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시한 소재를 추진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선정됐다. 소재에 따라 작가가 정해지면 사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고증위원회와 수시로 협의하며 작업이 진행됐다. 그림 비용은 적게는 120~140만원, 많게는 350~450만원선으로 당시로선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최근 이달희(울산대 교수) 반구대포럼 상임대표는 1992년까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소장하던 이 그림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대여됐고, 이후 1998년부터는 소유권이 아예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전된 것을 확인했다.

현재는 또다른 몇 점의 민족기록화와 함께 연구원 대강당 복도에 ‘반구대 풍요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달희 대표는 “그림은 반구대암각화의 국보지정 이전에 그려졌다. 당시 윤주영 문공부장관이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하는 등 암각화 보존에 관심이 많았고, 김원용 서울대박물관장 등 암각화의 가치를 아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소재선정위원으로 활동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유추했다. 이어 “이 그림의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앞으로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활용되어야 한다. 반구대포럼 역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협의해 울산전시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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