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절도 혐의로 신고된 흑인 10대 소년을 16차례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미국 시카고 경찰관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5일(현지시간) 시카고 형사법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전 시카고 경찰관 제이슨 반 다이크(40)에게 부과된 살인 혐의와 16건의 가중폭력 혐의 등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단 인종적 편견에 의한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1급 살인 혐의 대신 2급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반 다이크는 2014년 10월 시카고 남부 트럭터미널에서 소형 칼로 차량에 흠집을 내고 절도를 시도한 라쿠안 맥도널드(당시 17세)에게 16발 총격을 가해 사살했다.

법원과 시청 앞에서 반 다이크 처벌을 요구하며 평결을 기다리던 많은 주민은 환호로 결과를 반겼다. 

무죄 판결시 대대적 항의시위에 나설 준비를 한 이들은 최대 번화가 미시간 애비뉴를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고무된 감정을 표출하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 

경찰의 공권력 남용 혐의가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카고 언론은 “시카고 경찰관이 근무 중 용의자 총격 살해와 관련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은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반 다이크가 2급 살인 혐의에 대해 최소 보호관찰에서 최대 징역 20년, 총격 1회당 1건씩 적용한 가중폭력 혐의 16건에 대해 각각 6~30년 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전날 최후 의견 진술에서 “소형 칼을 든 10대 용의자에게 16차례 총을 쏴 명중시킨 것을 합리적이거나 필요한 일로 볼 수 없다”며 “현장에 같이 출동한 동료 경찰관들의 반응을 봐도 반 다이크의 총격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 다이크가 순찰차에서 내린 지 단 6초 만에 총을 쏘기 시작, 1.6초 만에 맥도널드가 쓰러졌는데도 이후 12.5초간 추가 총격을 가한 사실을 상기하며 “도착 전부터 총 쏠 결심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총탄 세례를 퍼부을 것이 아니라 체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살인이 아닌 비극적 사건일 뿐”이라며 “맥도널드의 인종과 총격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들고 있던 칼을 손에서 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책임 소재를 돌렸다. 

반 다이크는 직접 증언대에 올라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 훈련 과정에서 배운 대로”라며 눈물로 무죄를 호소한 바 있다.

이번 재판은 12명의 배심원단이 만장일치제로 반 다이크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소배심으로, 지난달 14일 배심원 선정작업을 마무리 짓고 17일 본격 심리에 들어가 열흘간 검찰과 변호인 측 증인 44명에 대한 심문이 이어졌다. 

배심원단은 이틀에 걸친 7시간 논의 끝에 의견 일치를 봤다. 

반 다이크 측이 총 7차례 행사할 수 있는 배심원 거부권을 5차례 행사, 최종 배심원단 구성이 백인 7명·흑인 1명·히스패닉계 3명·아시아계 1명으로 확정되면서 심리 시작을 앞두고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사건은 시카고 시가 유가족에게 합의금 500만달러(약 55억원)를 지급하면서 조용히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시민소송에 의한 법원 명령으로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현장 동영상이 전격 공개돼 전국적 논란과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켰고, 반 다이크는 뒤늦게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이어 연방 법무부는 시카고 경찰 문화에 대한 조사를 벌여 공권력 남용 및 인종차별 관행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카고 시의 총체적 부패가 지적받게 되면서 사법당국은 이 사건의 수사에 특별 검사제를 도입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2015년 재선을 앞두고 권력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매뉴얼 시장은 이번 재판 시작을 앞두고 전격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죄 평결이 나오면서 항의시위가 폭동으로 번질 우려는 일단 사라졌으나, 시카고 정치권과 사법 당국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총체적으로 부패한 시스템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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