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9월 중순쯤이었던 것 같다. 중간고사가 2주 남짓 남아있던. 점심식사를 마치고 올라와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3층 교무실까지 떠드는 소리가 들리다니 대체 무슨 일이래. 소리의 진원을 파악하려고 창밖을 내다보니 급식실 앞 중앙광장에 세 그루의 나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수 십 명의 아이들, 아이들의 간택을 기다리는 초코바 한 무더기가 보였다. 아참, 맞다. 중간고사 목표나무 이벤트가 있었지.

우리 학교는 올해부터 학생부 주관으로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열고 있다. 그 중 목표나무 이벤트는 정기고사 기간이 다가올 때쯤 진행된다. 점심시간이 되면 시험과 관련된 각오를 작은 종이에 적어 학년별로 한 그루씩 준비된 나무에 건다. 이벤트에 참여하고 나면 간식도 받아갈 수 있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가지마다 다양한 빛깔의 소망을 매단 나무들은 시험기간 동안 급식실 앞에 묵묵히 서서 시험을 치기 전 자신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되새겨준다.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남목 버스킹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다. 학생부 선생님에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신청을 한 후 중앙광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거다. 언젠가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듣기만 하는 것이 더 즐거워진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누가누가 잘하나 지켜만 보았다. 아이들 중 몇몇은 노래인지 괴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연을 보여주었고, 평소에 노래를 잘 한다는 몇몇은 감미로운 음색으로 귀를 호강시켜주기도 했다. 흥이 넘치는 선생님 몇 분도 참여한 덕에 남목 버스킹은 마치 작은 축제처럼 모두를 즐겁게 했다.

건물 모양이 ㄷ자 형태라 중간의 공간이 텅 비어있는 우리 학교. 목표나무 이벤트와 남목 버스킹이 열린 중앙광장은 교실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ㄷ자 중간에 비어 있는 바로 그 공간이다. 1년에 한 번 축제 때마다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용도가 없었던 중앙광장은 이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의 장(場)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지만 분명 긍정적인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교육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논지의 연수를 들을 때마다 늘 등장했던 말이다. 또한 지금 우리네 학교의 모습은 교실의 형태, 내부 구조,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동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폭넓은 사고를 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적합하다는 말도 참으로 많이 들었다. 동의한다. 1990년대에 중학생이었던 내가 생활했던 교실과 현재 내가 수업하는 교실을 비교해 봐도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위해 건축학적으로 더 멋진 학교를 지어주면 좋으련만. 당장의 오늘을 지내야 하는 학교를 다 허물고 새로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우리 학교의 중앙광장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보는 것은 어떨까? 지어진 지 10년이 넘어 건물 곳곳에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학교. 하지만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와 함께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이정현 남목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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