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민의 문화키워드'지금'
7. 처용토론회, 50년 만의 진일보

▲ 처용무 한 장면.

이달초 열린 처용문화제 기념 학술심포지엄에 대해 지역언론에서 다뤄졌다. 기사의 주장은 토론에도 예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토론문화와 비평문화가 잘 정착되기 바라기 때문에 크게 동의한다. 하지만 해당 기사만 보면, 토론회가 발표된 주장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 생산 보다는 마치 서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아집 싸움으로 비춰질수있어 학술토론회 무용론으로 번질까 우려된다.

이날 J소장의 질문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처용무는 세계적인 춤이고 자랑인데 왜 토론회가 처용을 폄하 하는가”이다. 그 근거로 처용무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천년이나 이어져온 춤임에도 한갓 무당굿으로 해석하고, 처용의 아내가 ‘역병’에 걸린 것을 ‘간통’이라고 읽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발표자 L교수는 “‘처용의 아내는 간통이 아니라 질병에 감염된 상황을 나타낸다. 처용의 아내가 간통을 하였다면 처용이 들어왔을 때 황급히 일어나 몸을 숨겼어야 하는데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고,(자료집 16쪽)’라고 했으며, ‘처용무는 신라와 고려, 조선, 그리고 오늘날까지 천여 년 동안 전승된 전통탈춤으로서 세계문화사에 우뚝한 문화유산이다(자료집 20쪽)’라고 말했음에도, 같은 주장을 가지고 품격이 낮은 토론회라고 하니, 마치 시비질처럼 보인다”고 했다.

결국 J소장은 “능과 묘가 다르고 무용과 춤이 다르듯이, 궁중나례인 처용무를 무당굿춤으로 해석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능’이 왕과 그 일족들의 무덤이고, ‘묘’가 일반인의 무덤으로 다르다고 해서 능과 묘가 무덤이 아닐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나례나 굿은 모두 귀신을 쫓고자 하는 목적이 동일한 행위이다.

이런 위계적 사고는 서구에서도 똑같이 진행된다.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예술이 기술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탄생한다. 예술은 아주 고상한 행위이고, 기술(공예)는 실용적인 행위가 된다. 이때 무용은 회화, 조각, 음악, 시와 함께 예술로 분류되었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서양무용은 신식이고, 전통춤은 낡은 것으로 인식되어, 우리에게 고급예술(무용-나례-능), 저급예술(춤-굿-묘)이라는 관념, 즉 사대주의와 봉건주의의 착종현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필자가 보는 토론회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처용에 대한 무속적 해석을 두고 신분적 견해차이는 이전의 종교적 견해차이보다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용 아내가 역병에 걸린 것이라는 견해는 이상과 실재, 설화와 역사, 축제성과 현실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종교적이고 외설적 해석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또 L교수는 하회탈춤이 세계적인 콘텐츠로 성장한 원동력이 바로 양반의 무용함을 폭로하는 풍자, 즉 제의적 반란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보수의 양반고장 안동에서 조차 풍자와 해학, 제의적 반란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자산을 만들어 가는데, 울산은 왜 안 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 이강민 울산미학연구소 봄 대표
 

끝으로 궁중처용은 울산에 돌려주지 않을 것이기에 울산이 처용의 고향이 되자면, 민간처용에 대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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