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않고
평화·경제등 보편가치 추구하면
통일의 문은 자연스레 열릴 것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억새밭에 이는 바람 소리가 가을의 쓸쓸함을 더해준다면 송이향은 가을 미각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다행히 올해는 송이가 대풍을 이루어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손쉽게 가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송이는 소나무 뿌리에서 포자가 발아해 성장하기 때문에 솔향의 기운을 오롯이 품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해 묵은 친구들과 담백한 막걸리에 갈은 송이를 섞어 마시는 술자리를 한번씩 한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해에는 추석을 한참 넘긴 후에 활짝 핀 송이를 헐값에 구입해 향취를 맛보곤 한다. 사실 1등품 송이에 비해 그 맛은 별반 차이가 없다.

올해의 첫 송이 소식은 북한으로부터 왔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께 북한 측에서 선물로 2t의 송이를 보냈다. 향취가 가장 뛰어나다는 칠보산 송이라 한다. 모두 이산가족들에게 추석 선물로 돌렸다하니 잠시라도 이산의 아픔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북한의 인민들은 대통령이 방북하기 며칠 전부터 송이 채취를 위해 칠보산 일대를 오르내리며 힘든 강행군을 하였을 것이다. 북한이 폐쇄 사회라 하여도 거기도 귀동냥이 있고 입소문이 있는 곳이라 송이가 남한으로 보내진다는 수군거림은 있었을 것이다. 송이로 인해 평화와 통일이 앞당겨 진다면 배고픈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입의 단내를 삼켰을 것이다. 힘들여 채취한 송이지만 정작 인민들은 하나도 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좀 유식한 말로 공산주의 이념의 단초가 되는 ‘노동소외’를 모두 감내한 것이다. 이번 송이는 김정은이 보낸 것이 아니고 북한의 배고픈 인민들이 보낸 희망 송이인 것이다.

북한에서 송이가 오던 날 양산 근처에서 택시를 타게 되었다. 유쾌한 30대의 젊은 기사였다. 불경기라 월 200만원에 못 미치는 수입으로 아이 둘을 키우려니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등 이런저런 우울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그래도 유일한 희망은 있습니다. 통일이 되어 북한을 개발하게 되면 일자리가 많이 생길 터이니 거기에서 돈을 좀 벌어 볼 생각입니다”라고 하였다. 통일이 금방 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듯 남북 어디서나 민초들에게 통일은 민족이니 자주니 하는 거창한 이념보다 지금의 고단한 삶보다 나은 일상을 꿈꾸는 소박한 희망인 것이다.

한민족의 피가 섞인 사람 중에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작금의 연이은 남·북·미 회담에서 보듯이 이 일은 뜨거운 가슴으로만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강 보더라도 북한핵의 처리, 세계사에 유례없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통합,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조정, 막대한 통일비용 조성, 격심한 남남갈등 해소 등등 지난한 일들이 앞길을 가로 막고 있다.

지난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한반도 포럼’에서 석학 토마스 마이어 교수는 남북한 문제와 관련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지 통일을 처음부터 얘기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동서독 통합 과정의 끝에 통일이 있었던 것이지 애초 통일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서독은 1960~70년대 아무도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을 믿지 않았고 추구하지도 않았다. 평화로운 공존과 통합을 추구하였을 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박영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에서의 통일은 내부적으로 정쟁을 위해서 쓰인다. 독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통일이라는 목적론을 말하지 않고 실천론을 중시해 평화와 교류, 보편주의를 추구했고 이 과정의 결과가 통일이었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을 다 소개 할 수는 없지만 통일대박 운운하면서 통일과 평화를 정쟁 위한 감성자극제로 사용하는 것은 남한내부의 갈등만 증폭시켜 오히려 평화 공존과 통합에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는 내용이다.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다. 안보와 통일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평화와 인권, 경제적 풍요 등 보편적 가치를 상호 추구하며 교류와 협력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통일의 문이 열릴 것으로 생각된다. 금방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언론의 호들갑과 일부 식자들의 언사는 남북의 소박한 민초들에 대한 희망고문이 될 뿐이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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