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천전리 암각화에는 유난히 추상적인 그림들이 많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동심원을 두고 어떤 이는 동심원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태양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산족은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을 동심원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루이-윌리엄은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가 인간의 뇌신경 작용에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그가 조사했던 산족은 환각에 쉽게 빠지는 체질을 지닌 제사장이 트랜스 상태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초자연적인 경험을 바위그림으로 표현한다. 트랜스 상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환각성 약물을 이용한 의학적 실험에서도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는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낸 것이다. 미국 고고학자 휘틀리(David Whitley)는 루이-윌리엄이 제시한 이미지에 더해 파편, 통합, 중복, 병렬, 반복, 회전이란 변형원리를 정리하였다. 선사시대 기호를 읽는 일종의 문법체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해석의 단계는 광시증 단계에서 본 이미지를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 인식하는 단계이다. 경험으로 축적된 뇌 정보로 인해 개인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미지가 해석되는 것이다. 같은 원(동그라미)이라도 굶주린 상태라면 빵으로, 목이 마르다면 물 항아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마지막 표상이미지 단계에 이르면 소용돌이나 회전하는 터널을 경험한다고 한다. 사각형 또는 격자가 보이는 모니터(monitor) 현상을 지나게 되면, 사람과 동물이 합쳐진 반인반수(半人半獸)처럼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이미지를 본다고 한다.

▲ 천전리 암각화.

다소 난해하고 복잡해 보이는 이론이지만, 절묘하게도 천전리 암각화에서 모든 단계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첫 번째 광시증 단계에 해당하는 병렬로 변형된 격자무늬①, 두 번째 해석 단계인 뱀으로 형상화된 지그재그 형상②, 세 번째 표상이미지 단계인 네발 달린 동물에 사람머리를 한 반인반수③를 볼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고래사냥과 해양어로문화를 담고 있는 독특하고도 유일한(unique) 바위그림이지만, 천전리 암각화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이미지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바위그림이 반구대를 마주하고 공존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목 울산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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