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선임기자

코발트색 가을하늘과 분홍 코스모스는 환상의 조합이다. 특히 코스모스는 허리가 휠듯 여린 여인들을 닮았다.

코스모스는 구한말 개화기 때 멕시코에서 들어왔다. 1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면서 우리나라 꽃이 됐다. 그러다가 ‘살사리꽃’이라는 우리 이름도 얻었다. 꽃대가 약해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한나절 수업을 빼먹고 연도(沿道)에 나가 태극기를 흔드는 일을 자주 했다. 5리나 되는 거리를 1시간 동안 걸어가 카퍼레이드가 오기 전 길가에서 기다리는 일은 곤욕이었다. 더욱이 잠시 한눈 파는 사이 순식간에 카퍼레이드가 휭하고 지나가버리면 돌아오는 체념의 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그 때 동무해준 것이 코스모스였다. 하늘하늘거리는 모습이 꼭 재잘거리는 소녀같기도 하고, 가을바람에 수줍어하는 동네 처녀같기도 했다. 학교 가는 신작로변에서, 인적 드문 논둑길 풀섶에서, 사립문 울타리 주변에서 코스모스는 단짝이자 연인이 되어주었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코스모스’(윤동주)

 

코스모스(cosmos)는 18세기 말 쯤 스페인 식물학자 안토니오가 멕시코에서 들여왔으며, 자신이 직접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코스모스’는 우주, 질서, 조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혼돈’이라는 의미의 카오스(chaos)와 대응하는 말이다. 유니버스(universe)가 공간개념의 ‘대우주’라면 코스모스는 우주만물의 ‘질서’라고 하겠다. 혼돈과 암흑의 세계에 빛과 질서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코스모스’라고 부른다.

깊어가는 가을 태화강변, 코스모스의 군무가 아름답다. 태화강 물빛에 반영된 청명한 하늘은 코스모스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켜 준다. 아니다…. 아무래도 코스모스는 강물에도, 하늘에도 아닌, 내 마음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나는 중심/ 코스모스는 주변/ 바람이 오고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코스모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중심이 흔들린다/……‘흔들리다’(문태준)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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