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예술은 현재 우리 사회를 투영한다. 그 흔한 각색도 없이 너무도 투명하게 투영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예술작품에 내재된 민낯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인지 동시대 예술, 현재의 예술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치 잠에서 깨 거울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듯 때로는 철저히 외면하곤 한다.

20세기 초 고상하고 우아한 예술에 젖어있던 유럽인들에게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보여준 음악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불새, 봄의 제전 등 작품의 전반에 내재된 원시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은 스스로 교양이 넘치는 유럽인들에겐 다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초 문명의 뒤에 숨은 유럽인들의 야만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의 작품활동이 절정에 이를 무렵, 숨어있던 그들의 야만은 실체를 드러내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20세기 중반 러시아의 참상을 음악에 처절히 담아낸 작곡가이다. 그는 독재정권의 암살위협과 2차 세계대전의 그늘 속에서 음악활동을 포기할 법 했으나 묵묵히 작품을 써내려갔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나치의 레닌그라드 포위작전의 한가운데서도 변함이 없었다. 매일같이 수차례 공습으로 폭약이 떨어지고, 굶주림으로 시체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그 상황에서도 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2차 세계대전 종료 후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는다. 마치 한을 쏟아내듯 작품활동을 계속해 15개의 교향곡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이 중에는 앞서 언급했던 2차 세계대전의 레닌그라드 포위작전 현장에서 써낸 저 유명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일까? 쇼스타코비치는 차이코프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스트라빈스키까지 그간의 러시아 작곡가들이 보여주었던 성향과는 또 다른 음색을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는 이전까지 러시아 음악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슬라브 민족의 한이 서려 있다. 그의 음악은 전쟁과 폭정으로 죽어간 수천만 슬라브 민족의 절규이면서 동시에 억압된 감정을 표출시키고자 하는 그만의 처절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빼앗긴 조국에 대한 향수를 절절이 담아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 예술가들은 항상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이자 생생한 증인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흔적 속에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취향을 분석해 적절히 재생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를 예술에 담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설득하기가 어렵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면 도리어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예술가들이 현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에게 내재된 예술의 정신이 또 시대의 요구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예술은 경험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넘친다. 온전히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중요한 경험이 또 있을까? 예술은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