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 차장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불통으로 일관하다 낙마한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새 정부는 물론, 6·13 지방선거를 통해 출범한 지방정부들도 저마다 소통을 앞세우고 있다. 국민청원을 접수하는가 하면, 신문고위원회를 설치해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지자체는 울산 울주군이다. 주민과의 대화나 각종 지역회의에 군수가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민원인의 접근이 쉬운 청사 1층에 ‘열린 군수실’을 설치해 문턱을 낮추고 있다. 공약 우선순위 설정을 위해 ‘100인 원탁토론회’라는 여론수렴의 장을 열기도 했다. 소통 전담 6급 별정직 비서관도 채용할 예정이다.

이선호 군수 취임 석달여 지난 가운데, 활발한 소통 행보에 대한 군민평가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예전과 달리 군수를 수시로 만날 수 있고, 해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둔 듯 하다. 소통을 위한 외부 접견이 많다 보니 군수의 일정표는 어느 지자체 단체장보다 빼곡하다. 일각에서는 군수가 소통에만 치우쳐 군정에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가끔씩 열리는 기자간담회의 군정 관련 돌발 질문에도 막힘이 없는 것을 보면 기우인 듯하다. 그러나 이 군수의 소통 행보에서도 아쉬운 점은 느껴진다. 순수한 소통이 아니라 정책 실행을 위해 소통을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군은 지금 최대 당면현안인 울주종합체육공원 조성 변경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 중이며 다음 주 공청회도 연다. 주민의 의견을 듣고 정책의 방향을 정하겠다는 소통의 일환이다. 그러나 울주종합체육공원 조성 변경 설문조사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본격적인 설문조사에 들어가면 변경안 선택 직전 변경을 추진 중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현재 울주종합체육공원 조성과 관련하여 울주군 내 축구장 시설 과대(12개)와 이용률 저조, 군민들이 필요로 하는 체육시설 제공 필요 등의 이유로 축구장(주경기장) 대신 실내체육센터 등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라는 문항이다. 설명에서부터 축구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선택의 폭을 좁힌 부분도 부적절해 보인다. 설문 참여자는 각 변경안에 대한 장단점을 확인하고 △실내체육센터 전환 △야구장·축구장 겸용 △원안 추진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그러나 ‘주경기장과 실내체육센터 동시 조성’은 항목에 없고, 이를 원하는 참여자는 기타 항목(구체적으로)에서 서술해야 한다. 현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선뜻 기타 항목에서 서술할 여지가 없다. 실내체육센터 전환을 염두에 두고 실시하는 설문조사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조만간 남구는 옥동 옛 울주군청사의 민간 및 공공개발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남구는 설문지의 여론 왜곡 가능성을 우려해 쏠림없는 내용을 바탕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100인 원탁토론회 역시 여론왜곡의 소지가 있어 보였다. 각 테이블에서 제시된 내용 중 일부를 진행자가 선택해 주요 항목으로 분류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 주관적 개입이 가능했다. 최초 설문조사 당시 도출된 정책의 우선순위가 토론회 후 다소 변한 것은 온전히 소통의 결과였을까?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여 다양성을 확보,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소통의 목적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소통을 이용하는 것은 소통이 아닌 ‘쇼통’이다. 다른 목소리가 자유롭게 분출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이 군수의 소통 행보에 대한 더 이상 의문이 제기되지 않길 바란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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