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선임기자

상강(霜降)인 오늘 울산 상북면 등억리 벌판에 서리가 내렸다. 절반쯤 베어져 바닥에 드러누운 벼 위로 허옇게 서리(霜)가 내려앉았다. 새벽에 공기가 차가워져 수증기가 풀잎에 맺히면 이슬(露), 기온이 더 떨어져 얼어버리면 서리(霜)라고 부른다.

해가 뜨면 없어지는 덧없는 것이 이슬이라면 서리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승사자다. 조로인생(朝露人生)은 세월의 덧없음을 은유하는 시적인 표현이지만, 서리는 추상같은 인생의 구체적인 모습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된서리를 맞고 ‘툭’ 떨어지는 오동잎의 비운은 그 모습만으로도 애절하다. 중국의 한 시인은 ‘오동잎 하나 떨어지매, 천하가 가을임을 모두 안다’고 했다(오동일엽락 천하진지추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노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촌각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못가에 돋은 풀들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학문의 어려움을 표현한 주희의 권학시(勸學詩) ‘우성(偶成)’을 거꾸로 읽으면 시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온다. ‘인생 역정을 다 이기고 이제 막 봄을 즐기려는데 벌써 오동잎이 떨어지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구나….’

최헌의 노래 ‘오동잎’의 가사를 보면 가을의 쓸쓸한 서정이 더욱 피부에 와닿는다. 얼굴만한 이파리가 삶이 너무 무거워 마침내 정적 속에 꺾여 떨어지는 소리는 노년의 절규같다. 이어 문득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묵직한 오동(梧桐)의 곡(曲)을 타고 서러운 마음을 세상에 띄워보낸다.

▲ 우탁의 ‘탄로가’ 시비(詩碑)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알 수 없어요’(한용운)

지난 5월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사인암(舍人巖)을 둘러보았다. 봄빛이 완연한 사인암에 오르다가 문득 사인(舍人) 우탁(禹倬)의 시비(詩碑)를 마주쳤다.

한손에 막대잡고/ 또 한손에 가싀쥐고/ 늙는 길 가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니/ 백발이 제 몬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탄로가(嘆老歌)

서리가 내린 오늘, 괜히 멜랑콜리해지는 아침이다.

이재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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