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얼마 전 지인과 태화 강변의 브런치 카페에 갔었다. 2층 창으로 펼쳐진 가을 태화 강변의 풍경이 참 예쁘다고 느낄 즈음 주문한 커피와 음식이 도착했다. 서빙을 마친 아르바이트생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혹시 한문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조금 낯익은 얼굴이다. 한참을 반갑다며 이야기하던 중 “선생님! 예전 수업 때 졸업하고 밖에서 만났을 때 인사하면 커피 한잔 사주신다고 하셨어요!”라고 옛 기억을 꺼낸다. 맞다! 내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기억하고 인사해 준 제자가 너무 고마웠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마침 폰에 있던 커피 쿠폰을 전송해 주었다. 내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교사로 살아가는 기쁨이 이런 것일까? 어찌 보면 내겐 수업 때 흔히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 요즘 하는 말로 ‘아무말대잔치’였을 수도 있지만 이 친구에게는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고 마침 그런 순간이 온 터이다. 이전에도 한 남학생이 마트에서 쇼핑하던 내게 아주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더니 허공에 ‘갈 지(之)’자를 크게 썼다. “선생님께서 졸업 후 만났을 때 ‘갈지(之)’ 쓸 줄 알면 짜장면 사준다고 하셨어요!”라고 한다. 처녀 시절 중학교 2학년 남학생, 그야말로 중2병 학생을 상대로 한문을 가르치며 갈지자는 정말 중요하다며 이런 미래의 현상금까지 걸며 했던 나의 말을 이 학생은 기억했던 것이다. 교사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학생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교사는 ‘말 한마디의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한편으로 나 역시 학생이었던 시절 선생님께서 하신 말 한마디가 기회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수학 담당이셨다. 매 수업 시간마다 쪽지 시험을 쳤고 틀린 개수대로 때렸다. 매번 맞았다. 선생님께서는 “너 공부 잘하는 줄 알았는데?”라고 말씀하셨을뿐이다. 하지만 너무 죄송한 마음에 싫어하던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영어 선생님께서 “얼마 전 교무실 문 앞에서 어떤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선생님 먼저 들어가세요’라며 양보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며 그 학생을 기특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나였다! 누군가 기특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한 것은 당연했다.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한문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재미난 시도를 많이 한다. 수업 중 아이의 기발한 생각, 재미난 표현, 뜻밖의 행동에 여러 종류의 칭찬 도장과 칭찬 멘트를 날린다. 하루 종일 담임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친구는 학교생활 잘못하는 것이라고 협박까지 하며 학급의 아이 하나하나에게 더 많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학령기간 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교사가 되어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때가 되었다. 오늘도 학교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하루를 뒤돌아본다. 오늘 나의 말 한마디는 어떤 누군가에게 어떻게 각인되어 어떤 행동할 기회를 주고 있을까? 양수진 울산중앙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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