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수 개인택시기사

한 여름 푸르름 속에 묻혀있던 감나무 한 그루가 가을 햇살을 머금고 노란 속살을 내민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던 감꽃도 수줍음에 얼굴을 숨기고 언제 피었다 지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탐스런 가을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과일 중에 감이란 이름은 어쩐지 촌스럽고 순박한 시골처녀의 수줍음처럼 늘 가까이 해도 부담이 없어 좋다. 어느 나무의 단풍색채가 아름답다 해도 가지마다 달려있는 노란 감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마음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내 어릴 적 감에 대한 추억이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보관해둔 지폐 한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동네 가게에서 감을 사니 한 보따리를 주었다. 당시 돈의 가치를 몰랐던 내가 집에 와 어머니께 보였더니 야단을 맞고 일부 환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또 내 젊은 시절 감나무가 있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커서 꼭 감나무있는 집에 장가를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엄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는 집에 장가를 가고 말았다.

감나무는 어느 과일나무와 다르게 옛날에는 보통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친근한 유실수고 키우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보니 흔하게 볼 수 있다. 또 익어가는 과정에서 떨어져 물러터진 감을 주워먹는 재미도 솔솔했다. 가을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감나무가 주는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시골 인심처럼 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골길을 가다보면 산자락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에는 감나무 한 두그루씩 노랗게 물든 감들을 볼 수 있다. 저녁 무렵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탐스런 감들이 석양에 물들 때 그 시골의 평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주의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는 미움도 사랑도 한 단어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식으면 미움으로 변하고 미움이 변해서 사랑이 되듯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예쁜 단풍도 가을이 지나면 다 떨어지지만 감나무에 달린 감은 찬 서리 눈보라에도 견디며 마지막 까치밥이 되어 한해의 생을 다하는 그 모습이 볼수록 대견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서 인생의 참 의미를 배운다. 세상의 모든 생물체는 번식을 하고자 하는 생태적인 본능이 있다. 사람과 동물들은 암컷과 수컷이 만날 수 있지만 식물은 서로 이동성이 없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중간 매개체를 불러들여야 하는데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잎이 난다. 꽃은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고 또 향기와 꿀도 만들어 유혹한다.

열매가 맺히면 파란 몸을 숨기고 아무도 따먹지 못하게 떫고 쓰게 만든다. 익으면 빨갛고 노랗고 까맣게 물들이고 또 달콤한 맛을 낸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해 씨를 퍼뜨리게 하여 번식을 하게 된다. 말 못하는 식물도 번식을 위해 이런 교태 끼를 부리고 부단히 애쓰는 것을 보면 인간은 누구를 위해 사는지 요즘 저출산으로 인한 인간생태계에 큰 위기의식을 느낀다. 나뭇잎의 존재의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 나뭇잎은 자기 몸을 살찌우기 위해 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유실수 나무는 열매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핀다. 잎이 없으면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열매가 자라지 못한다. 열매가 익어 다 떨어지면 잎도 더 이상 필요없기 때문에 떨어진다. 자연의 생태계가 얼마나 신비스러운지 그 이치를 깨달음으로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게 된다.

가끔 집에 유실수를 심어놓고 열매가 열린 상태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영양분이 엉뚱하게 윗가지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전지를 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열매가 열린 상태에서 함부로 전지를 하면 나무가 스트레스도 받지만 또 열매에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이 안돼 열매 성장에 역효과를 준다. 깊어가는 가을에 감나무의 존재감은 과일나무 중에 한해의 대미를 장식한다. 더욱이 도심 속에 감나무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추억을 생각하며 순박한 시골의 정서와 풍경을 맛볼 수가 있다. 시청마당에도 구청마당에도 학교교정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득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겨울이 찾아오지만 감나무 한 그루에 노랗게 익은 땡감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결실과 풍요로움이 아직 가을임을 실감해 본다.

변종수 개인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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