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훈풍에 기대감 드높아진 통일
경제력·이념의 차이 해소만큼이나
정서적 거리 좁히기도 큰 장벽일터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스님 앞에서 염불 외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워들은 바를 바탕으로 서양미술에 대해 한 두 구절 읊어본다. 그림만 가지고 말하면, 이집트고대미술은 2차원적이라 대체로 얼굴과 발이 옆을 보고 있고 매우 원초적이다. 중세미술은 대부분 예수와 성모마리아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성경에 나오는 장면을 그린 소위 성화(聖畵)가 주를 이룬다. 대개 작가미상(作家未詳)이고 그림 속 인물들 얼굴에 하나같이 표정이 없다. 이어서 인간과 인간성이 전면(前面)에 나타나는 르네상스미술은 얼굴에 표정과 생동감이 있어 우리에게 훨씬 친근하고, 작가도 확실히 알려져 있다. 이렇듯 시대별로 미술작품 간에 차이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사실(事實)묘사가 대부분이라 현대미술의 특징인 작가 나름의 느낌묘사 그리고 보는 이의 주관적 상상을 끌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로마의 보르게세미술관, 바티칸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산더미처럼 쌓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베르니니의 작품들에 질린 나머지, 갑자기 칸딘스키나 피카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흐가, 세잔느가, 모네가, 샤갈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로마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전통한식 먹으러 전주(全州)에 갔는데 하도 많이 먹어 질린 나머지 피자집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 나타나는 제1전시실 정면 벽과 측면 벽에 꺾어져 걸린 사진 한 장이 우선 눈에 가득 들어왔다. 세로 약 2m, 가로 약 7m 정도 되는 크기의 초대형 작품으로서 어느 중국인 작가가 북한에 들어가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닌 어느 늦은 가을날의 해가 지는 을씨년스런 오후가 배경이다. 추워보였다. 주위의 건물들을 봤을 때 지방 소도시로 추정되는 동네 빈터에 족히 500명은 될 것 같은 주민이 모여 8명으로 구성된 악단의 연주를 듣고 있는 장면이었다. 4명은 악기를 연주하고 4명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객 중 200명 정도는 무대 앞 땅바닥에 앉아있고 나머지는 그 뒤에 선채였다.

이 초대형사진이 발길 빈번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가장 정면에 걸려 있는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제목을 보았다. ‘Not in the Past, Not in the Present, Not in the Future(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라 적혀 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연주자들은 손짓 몸짓을 하며 신나게 연주하고 있으나, 질서정연한 관중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아니 한사람을 의도적으로 무표정하게 만들어 얼굴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500여장 복사하여 포토샵(Photoshop)으로 배치한 느낌이었다. 극도의 비정상이었다. 혹여 그림이라면 그렇게 그릴 수도 있겠으나, 사진이라면 단 한사람의 예외라도 있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적어도 꽤 신나는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데.

그러고 보니 사진의 시대는 최근인데, 인물들의 무표정함은 800년 전 중세미술의 인물모습을 꼭 닮았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현대미술관에 이 사진을 걸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어떠한 사람들도 이렇듯 표정 잃은 건조한 집단의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가능하다고 느끼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이러한 비현실적인 장면을 담은 이 사진이야말로 현대미술작품 아니 초(超)현대미술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족히 10분은 그 사진 앞에 있었다. 북한의 현실에 대해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는 충격, 같은 동포로서 느끼는 연민, 사진을 찍은 작가와 제1전시실 정면에 이 사진을 걸은 미술관측의 괘씸함이 마구 뒤엉켜 나의 머리는 사뭇 혼란스러워졌다. 이후 다른 공간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도 그 사진의 잔상(殘像)이 도통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요즘 우리 주변엔 비핵화다, 종전선언이다, 평화체제구축이다, 경제지원이다 말이 많지만 어떻든 그 끝은 통일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통일과 관련하여 쉽지 않지만 극복해야 할 것으로써 경제력 차이, 이념과 사상의 차이 등 주머니와 머릿속 괴리를 얘기한다. 그러나 그 보다도 서로 헤어져 지내온 지난 7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벌어질 대로 벌어져버린 남·북주민간의 정서적 거리(距離), 그 조성이유가 어떻든 이 가슴속 괴리야말로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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