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예, 그 불멸의 길’, 백성을 인도하는 민족의 길 보여줘

울산의 쉰들러 이예(李藝), 그 위대한 탄생
뮤지컬 ‘이예, 그 불멸의 길’, 백성을 인도하는 민족의 길 보여줘

 섬나라 일본는 태생이 노략질이었다. 중국이 흉노, 거란, 여진에 시달렸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에 고초를 당했다. 문무대왕이 바다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왜구를 막아야 하겠다는 절체절명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구는 전라도와 경상도, 나아가 개경의 입구인 강화도 교동과 예성강 하구에까지 출몰했으며,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창작뮤지컬 ‘이예, 그 불멸의 길’은 울산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이의  벼락같은 운명에서 출발한다. 울산은 무룡산에서 아침해가 뜨면 태화강에 물안개가 피어올라 온 마을을 뒤덮고, 아이들은 나물 캐고 술래잡기를 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런 마을에 왜구가 들이닥쳐 무고한 백성을 잡아가고 어머니까지 일본으로 끌고 갔다.

 뮤지컬은 투 트랙으로 이야기를 쫓아간다. 이예와 어머니간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일본으로 피랍된 백성의 구출….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어머니의 피랍은 백성의 피랍으로 섞여들어가고, 어머니에 대한 이예의 사랑은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된다. 마지막 대단원에서 이예는 아직도 오지 않는 어머니의 환영을 보면서, 어릴 적 아침해가 떠오르는 무룡산과 태화강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태화루를 다시금 떠올린다.

 이충호 원작소설과 뮤지컬은 ‘이예, 그 불멸의 길’은 ‘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길’이란, 사람이 먼저 생각을 일으키면 가슴 속에 길이 열리고, 가까운 사람들 속에 부대끼면서 사랑을 느끼면 서로 아끼는 마음의 길이 난다. 그리고 마음이 간절하고 고결해지면 비로소 구만리 바닷길이 열린다.

 이예(1373~1445)는 43년간 외교관으로서 40차례가 넘게 일본을 왕래하면서 667명의 조선인을 귀환시켰다. 특히 오키나와(유구국)에 조선인들을 잡아와 사고파는 노예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예는 멀고도 험한 구만리 뱃길을 자청, 조선인들을 대거 구출해왔다.

 이예의 인본주의는 실제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스 감독의 명화 ‘쉰들러 리스트’를 연상케 한다. 쉰들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1100명의 유태인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구해냈다. 쉰들러가 운영했던 회사의 회계사 이작 슈텐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면서 탈무드의 격언으로 쉰들러를 위로했다.

 죽음의 바닷길을 40번이나 오가면서 이예는 ‘길’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의 뱃길’은 ‘백성이 사는 길’이기도 하고, ‘내가 죽는 길’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667명의 귀환은 민족의 영혼을 거둬들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예는 조선과 일본의 길(외교)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직 미개한 일본을 찾아가 설득하고 꾸짖고 달래 조선과 일본간의 외교를 튼 능란한 수완가이면서, 일본의 배를 연구해 훗날 ‘판옥선’이라는 해상전투의 교두보를 확보한 전략가이기도 했다.

 계해약조는 대마도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을 통제하기 위해 맺은 조선과 일본간의 획기적인 조약이었다. 이예는 울산의 염포와 제포, 부산포 등 3포에 대해 대마도주(主)에게 서계(書契: 조선과 일본간의 공식 외교문서), 도서(圖書: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 문인(文引: 통행·여행 허가증) 등을 지참하도록 했다. 또 세견선(歲遣船: 대마도주가 내왕을 허락한 일종의 무역선) 50척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대마도주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대신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이예는 왜구의 약탈과 고려왕조의 비운을 겪으면서 울산의 풍운아로 성장, 조선의 전문 외교관으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지난해 개통된 ‘이예로(李藝路))’(울산시 남구 옥동~북구 농소)가 더 연장된다고 한다. 당초 이 길은 17.12㎞였는데, 지난 10월25일 중앙도로명주소위에서 12.91㎞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또 중앙도로명주소위는 경남 양산과 부산 기장군에 걸쳐 있는 12.60㎞ 구간을 조선통신사 발자취를 따라 ‘통신사로(路)’로 정했다.

 뮤지컬 ‘이예, 그 불멸의 길’은 어머니에서 시작해 어머니로 끝난다. 어머니의 길은 이예를 인도했던 ‘민족의 ‘길’이자 ‘백성의 ‘길’이었다. 이재명 선임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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